[특집/표준어 정책, 비판적 접근과 대안 모색]

표준어 규범과 현실?①
표준어 사정 기준과 표준어의 성격

김주필 / 국민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1. 논의의 방향

  표준어 사정 기준은 <표준어 규정>(이하 <규정>, 1988)의 표준어 사정 원칙에 제시되어 있다. <규정>의 ‘총칙 제1항’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가 그것이다 . 이 원칙은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1912)의 “경성어 (京城語)를 표준으로 함. ”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하 <통일안>, 1933)의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런데 <통일안>과 <규정>의 원칙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통일안>과 <규정> 모두 서울말로 되어 있어 차이가 없지만, <통일안>의 ‘현재’가 <규정>에서 ‘현대’로, ‘중류사회’가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뀐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규정>의 개정에 영향을 준 것은 없다고 하였다(국어연구소a 1988). 이러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규정>(<통일안>)에 제시된 표준어 사정의 기준은 ① 교양 있는 사람들(중류사회), ②현대(현재), ③ 서울말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1)   표준어 사정 기준에서 ①은 표준어의 사회적 기준으로, ②는 시대적 기준으로, 그리고 ③은 지역적 기준으로 설명되어 왔다 . 그러나 이들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 기준들이 표준어 사정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표준어의 성격도 이들 기준을 가지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 세 기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표준어 사정 기준의 적용 방법과 국어 표준어의 성격에 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2. 표준어 사정 원칙의 기준

   2.1. 표준어의 사회적 기준: 교양 있는 사람들

  <규정>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통일안>에서는 ‘중류사회’였다. 이 ‘중류사회’가 모호하다고 판단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경향을 감안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꾸었다고 한다(국어연구소a 1988, 이희승·안병희 1989). 그러나 사실 ‘교양 있는 사람들’도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람의 부류나 집단을 말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교양’이라는 말 자체가 정의하기 쉬운 말이 아니어서, 표현으로만 보면 구체적인 사회 집단이나 부류를 상정하기 어려운 ‘교양 있는 사람들’은 ‘중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부류나 집단을 말하는 ‘중류사회’보다 더 추상적이고 모호한 기준일 수도 있다.
  사회 계층과 언어 사용 양상의 관계는 사회언어학의 관심 부분이다. 사회언어학에서는 언어의 변이에 작용하는 사회적 특성으로 언어 사용자의 사회 계층(social class), 발화의 상황이나 형식(style), 성별(gender), 나이(age), 종족(ethnicity), 유대관계(social network), 지리적 요인(geographical factor), 개인의 특성(individual characteristic) 등에 주목한다. 그 중에서도 사회 계층과 언어 분화의 관련성은 사회언어학에서의 주된 관심 부분 중의 하나이다. 사회언어학에서, 사회 계층은 언어 사용자의 직업, 수입 정도, 교육 정도, 아버지의 직업, 주택의 고급 정도, 주거지의 위치 등을 점수로 계량화하고, 계량화된 점수를 상, 중, 하의 세 단계로 나눈 다음,2) 다시 이 각각의 단계를 상, 중, 하로 세분화하여 다음과 같이 9개의 세부 계층으로 나누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1) 사회 계층
상류층 상상층 상중층 상하층
중류층 중상층 중중층 중하층
하류층 하상층 하중층 하하층
  (1)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적을 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 상태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변이형을 안정적이어서 언어 변화를 주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언어 변이에 대한 논의는 주로 중류층과 하류층에 관심을 두게 된다. 중류층의 언어 사용 상태는, 상류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하류층에서 일어나는 언어 변화를 거부하여 상류층의 변이형을 유지하거나 상류층의 변이형으로 교정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와 달리 일반적으로 무의식적인 어어 변화를 주도하는 하류층은 중류층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사회 계층과 언어 사용의 관계는 중류층과 하류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중류층 중에서 하류층과 유사한 언어 사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층은 중중층보다는 중하층이다. 그래서 사회언어학에서 중류층과 거의 차이가 없는 중상층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중층부터 하하층까지의 언어 사용 양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들 각 계층에 따른 언어 사용상의 특징을 영국의 노르위치(Norwich)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ng 발음의 양상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2)는 노르위치 사람들이 ‘walking’과 ‘going’등과 같은 현재분사형의 ‘-ing’ 발음 [ŋ](이하ng-1)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n](이하 ng-2)으로 발음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이다(Trudgill 1974).


      (2) 사회 계층에 따른 ng-2 발음형의 사용 양상


  (2)에 나타나는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중중층에서 하하층으로 갈수록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n]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중층에서는 [n]을 사용하는 사람이 3%에 불과하지만, 중하층 15%, 하상층 74%, 하중층 88%, 하하층 98%로서, 하층으로 갈수록 [n]의 사용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중류층들 사이에서는 [n]의 사용 비율이 모두 낮아 두 계층 사이에 큰 차이가 없고, 하류층들 사이에서는 [n]의 사용 비율이 모두 높아 큰 차이가 없지만, 중하층과 하상층 사이에는 [n]의 사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리하여 이들 계층에 따라 ng-2의 사용 양상을 나타낸 그래프는 대체로 S자 곡선을 그린다. 셋째 언어의 변이형의 사용과 사회 계층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경향으로서 나타난다.
  사회 계층에 따른 이러한 관계에서, 사회에서 인정하는 변이형을 사용하는 중류층은 인정받지 못하는 방향의 언어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하여 중류층, 그 중에서도 중하층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인정받는 변이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아가, 그 변화를 주도하는 하류층의 언어 변화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령 하류층에서 ‘ng’에 대해 [n] 발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원래 [n]이었던 것도 [ŋ]으로 과도하게 교정하는 과도교정 현상(hypercorrection)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Labov 1972). 이러한 중류층의 언어 태도와 달리, 하류층, 그 중에서도 하상층에서는 중층의 언어 사용과 동일한 언어 변이형을 사용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중류층의 언어 변이형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로 간주된다. 
  이러한 중류층의 언어 사용과 언어 변화를 토대로 하면, 표준어 사정 기준의 ‘중류사회’는 사회언어학에서 말하는 ‘중류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류 계층의 언어를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할 때,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중류사회를 설정할 수 있느냐, 중류사회가 설정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중류사회와 언어 사용의 관계가 서구와 같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농경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을 뿌리를 둔 우리 사회에서, 서구와 같은 성격의 사회 계층을 설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설사 상·중·하층으로 구분되는 사회 계층을 설정한다하더라도 그러한 사회 계층과 언어 사용의 관계가 구미와 같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계층을 나누고 그 계층에서 사용하는 언어 변이형이 특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한 논의는 아직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3)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회 계층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조차 활발히 연구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 어느 사회보다 사회 계층 구분이 혼란스러워 계층 간의 언어 차이가 그럴 듯하게 드러나리라는 기대가 잘 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이익섭 1984; 193). 근래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 계층이 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사회 계층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가 없으며, 현재 상태에서 계층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서구의 연구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규정>에서는 <통일안>의 ‘중류사회’를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꾸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나 부류’를 말하는지 딱히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 또는 그 집단이나 부류’ 정도로 하여,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중류사회’가 갖는 문제점을 다소나마 보완해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규정>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는 기준을 통하여 표준어가 ‘사회에서 인정하는 언어 변이형’을 지향함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류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중류사회’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지칭하는 구체적인 집단이나 부류는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내용의 변화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표준어 사정의 사회적 기준으로서 ‘중류사회’와 달리, ‘교양 있는 사람들’이 현재 상태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집단이나 부류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음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류사회’는 ‘중류 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중류 계층의 언어 사용 양상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으나, ‘교양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구체적인 집단이나 부류를 설정하지 않은 채 표준어 사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의 집단이나 부류를 지칭하는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이런 점에서 언어의 표준어의 기준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을 결정짓는 사회적 요인 (예를 들면 ‘학력, 직업의 특성’등)을 찾아,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특성을 밝혀야 할 것이다.


   2.2. 표준어의 시대적 기준: 현대

  표준어 사정의 시대적 기준을 <규정>에서 ‘현대’라고 하여 <통일안>의 ‘현재’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 말의 교체 역시 본래의 개념이나 취지에는 차이가 없지만, ‘역사의 흐름에서의 구획을 인식’하여 (국어연구소a1988; 7) 바꾼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 , 미래와 대립적으로 사용되고, ‘현대’는 중세, 근대와 대립적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표준어의 시대적 기준으로 간주하는 한에 있어서 의미상의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표준어 사정의 시대적 기준으로서 ‘현대’이든 ‘현재’이든 그 시대적 범위가 어느 시점이나 시간대를 말하는지 문제가 되어 왔다 . <통일안>의 ‘현재’나 <규정>의 ‘현대’는 20세기를 말하는 정도로 받아들여 왔지만, 21세기가 된 현 시점에서는 그러한 기준은 적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민현식(1999; 326)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의 개념을 흔히 20세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왔지만, 21세기가 된 현 시점에서 이르러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현대’로 보아야 할 것인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민현식(1999)에서는 ‘현대’의 시간적 길이를 계산하는 데에 세대를 도입하고 , 한 세대를 30년 전후로 잡아 최소 3세대 정도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전제로, <규정>이 고시된 1988년을 기점으로 3세대 90년 정도의 기간을 ‘현대’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현대’가 표준어 사정의 시대적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라는 개념을 절대적인 시간대로 간주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 왜냐하면 앞으로도 시간은 계속 흘러 갈 것이므로, 1988년을 기점으로 하는 절대적인 시간대로서의 90년은 머지않아 다시 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라는 표준어 사정의 기준은 표준어를 사정하는 시기에서 판단하는 ‘현대’로 해석하여, ‘현대’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 절대적인 시간대가 아니라 표준어 사정의 시기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생각된다 .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표준어 사정 작업은 1988년의 작업으로 완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표준어 사정 작업도 앞으로 또 언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 시점에서 표준어 사정 기준으로서의 현대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표준어 사정 기준으로서의 ‘현대’를 이러한 상대적인 시간대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표준어를 사정하는 시점에서 ‘현대’를 어느 세대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 다시 말해 민현식(1999)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세 세대 정도를 염두에 두고 사정을 한다고 할 때에도 그 가운데 어느 세대를 말을 기준으로 사정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언어 변이형의 사용이 점진적인 변화 경향을 보일 것이므로 세대에 따른 언어 사용의 특성을 먼저 조사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그러한 자료를 세대별 언어 사용의 특성을 고려하여 사정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3. 표준어의 지리적 기준: 서울말 

  표준어 사정의 기준으로서 ‘서울말’은 서울 방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은 그동안 많이 지적되어 왔다. 여기에서도 간단하게 ‘서울말’과 표준말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고자 한다.
  표준어 사정 원칙으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대의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여 서울말과 표준말이 같지 않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서울말’은 서울 방언을 말하며, 서울 방언이 곧 표준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말을 표준말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이러한 인식은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롯한 남부 방언 화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다.). 표준말은 원칙적으로 서울말로 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일정 수준 이상의 학교 교육을 받은 서울 토박이들의 말과 표준말을 비교해 보아도 양자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난다.
  그러나 표준말과 서울 방언은 많은 차이가 있다 . 다음 자료는 3대 이상 서울에서 거주하여 온 토박이 서울 사람의 말이다(최명옥 1998에서 재인용).
(3) …<중략> … 또 인제 그때 나:가 여기 오기 전에, 먼점 반장 허던 영:감님이 그 두 내우가 있어. 그 영감님이, “박서방! 피란 안 가우? 갑시다.”그래. “아 . 우리 일가가 없어서 못: 찾아가요.” 그랬어. 피:란가는 건 일가 찾어 가는 게 아니라 먼:: 데로 가서 아:무 빈: 집이나 있으믄 들어가 잠자구 나오구 또 딴 데루 가구. 그러는 거라구. 그래서 인제 수원꺼정 간다구 갔는데 가는 길:두 몰:르지 댕겨 보질 않아서. 지끔 그때 거기가 버턱고개라구 그러던가 …… 무슨…<이하 생략>…
<국립국어연구원 1997: 167,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Ⅰ)>
  (3)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울토박이들의 말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이 표준어형이 아니다. 어휘에 있어서도 ‘먼점 (먼저), 반장 허던(하던), 내우(내외), 피란(피난), 몰르지(모르지), 댕겨(다니지), 지끔(지금)’ 등은 표준어가 아니며, 접사나 조사, 어미에 있어서도 ‘반장 허던 (반장 하던), 가우?(갑니까?, 가십니까?, 가요?, 가세요?), 찾어(찾아),있으믄(있으면), 잠자구(잠자고), 나오구(나오고), 딴 데루(딴 데로), 가구(가고), 거라구(거라고), 수원꺼정(수원까지), 간다구(간다고), 길두(길도), 버턱고개라구(버턱고개라고)’ 등도 모두 표준어와 거리가 멀다. 더욱이 ‘나가’와 같이 1인칭 대명사 ‘나’ 다음에 주격조사 ‘가’가 결합된 ‘나가’는 표준어로서는 ‘내가’가 사용되며, 서울 방언에서는 ‘나’로서 전라도 방언과 같은 모습을 보이며, ‘가우 ?’의 의문법 어미 ‘-우’는 경상도 방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4)
  이와 같이 서울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실제의 서울 방언과 표준어를 비교해 보면, 서울 방언은 표준말과 많은 차이가 있다. 사실, 표준어의 실체에 정확히 접근하기 위하여 국립국어연구원에서 1997년부터 조사한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Ⅰ-Ⅲ)을 보면 서울 토박이들의 말에도 서로 차이가 있음이 발견된다. 서울의 종로구와중구에서 출생하고 주요 성장기를 보낸, 3대 이상이 서울에 거주한 60대부터 90대에 이르는 서울 토박이 화자 10명의 말을 보면, 조사항목 ‘가리마’에 대해서 ‘가르마 , 가루마, 가림마, 가름마, 가리먀’ 등이 나타나며, 조사항목 ‘그을리다①’에 대해서 ‘꺼슬리다, 거슬리다, 구슬렀다, 거슬린다. 거슬른다, 그슬린다, 그슬렀다, 그실리다’로 되어 있어 어느 한 사람도 조사항목과 같은 형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5) ≪서울 토박이말 자료집≫에는 이와 같이 화자에 따라 다른 변이형을 사용하는 예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표준말의 기준이 되는 서울 방언이 무엇인지도 규정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어휘나 문법 형태소 외에도 표준어와 서울 방언은 언어학의 제 층위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 활용형과 곡용형의 음성 실현, 운율적 자질의 특성, 복합어나 파생어를 구성하는 형태론적 특성과 분포, 형태들이 갖는 문장에서의 공기 제약과 의미 영역, 나아가 문장의 억양 등 언어학의 제 층위에서 서울말은 표준어와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 방언을 표준어 사정의 기준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들 언어학적 제 층위에서의 특징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서울 방언이 다른 방언과 차이 나는 고유한 특징은 무엇이며, 다른 방언들과 공유하는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서울 방언의 특징이 우선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6)


3. 국어 표준어의 성격

  지금까지 표준어 사정 기준의 사회적 기준으로서 ‘교양 있는 사람들’을, 지역적 기준으로서 ‘서울말’을 검토하였다 . 이 검토를 통하여 표준어 사정 기준들의 특성을 대체적으로 알 수 있지만, 이러한 기준들을 표준어 사정 과정에 적용할 만큼 사전 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 표준어 사정의 기준으로 분명하게 적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표준어 사정 작업은 어떠한 태도나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표준어 작업을 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현행 표준어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사전>을 이어받은 <표준어 규정>의 ‘제 1부’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규정>은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 제2부 ‘표준 발음법’으로 총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은 ‘제1장 총칙’, ‘제 2장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과 ‘제 3장 어휘 선택에 따른 표준어 규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의 제2장은 ‘제 1절 자음’, ‘제2절 모음’, ‘제 3절 준말’, ‘제 4절 단수표준어’, ‘제 5절 복수표준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3장은 ‘제 1절 고어’, ‘제2절 한자어’, ‘제 3절 방언’, ‘제 4절 단수표준어’, ‘제 5절 복수표준어’로 구성되어 있다 . 대체로 보아 제2장은 하나의 형태로 소급할 수 있는, 즉 발음의 변화로 인한 변이형을 대상으로 표준어 여부를 사정한 것이고, 제3장은 하나의 형태로 소급할 수 없는, 형태론적 구성이 차이가 나는 어휘들의 선택에 초점을 두어 표준어 여부를 사정한 것이다.
  제1부 제2장의 ‘제 1절 자음’은 제 3항과 제4항은 거센 소리, 제5항은 어원과의 관련성, 제6항 형태에 따른 의미 분화 인정 여부, 제7항은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 ‘수 -’에 대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제3항부터 제7항은 단일한 형태로 소급할 수 있는 변이형들이 나타날 때, 그 변이형들이 소급하는 ‘어원적인 원형’을 표준어로 정한 것이다 . 여기에서 말하는 ‘어원적인 원형’은 이전 시기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로서 , 구어적인 사용보다는 어휘의 형태를 중시한,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문헌어 자료들로 간주된다. 제4항의 ‘다만’에 “어원적으로 원형에 더 가까운 형태가 쓰이고 있는 경우에는”이란 표현에 보이듯이 ‘어원적인 원형’ 중심의 어휘를 표준어로 사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2장의 표준어 작업은 문헌어 중심으로 수집된 ‘어원적인 원형’과 관련 변이형들을 놓고 이전의 문헌어를 표준어로 택할 것인가 새로운 어형을 표준어로 택할 것인가를 정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정할 대상으로 모은 자료의 성격이나 ‘어원적인 원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표준어 작업의 과정은 결국 ‘공통의 문헌어’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헌어적 전통 위에서 표준어 작업이 이루어졌음은 제 2절에서도 확인된다. 제2절의 제8항은 주로 모음조화에 해당하는 모음의 차이에 의한 변이형들, 제9항은 ‘ㅣ’ 모음 역행동화 현상의 적용 여부에 의한 변이형들, 제10항은 이중모음의 단모음화와 관련되는 변이형들, 제11항은 다양한 모음의 차이에 의한 변이형들, 제12항은 ‘上’의 의미를 갖는 ‘웃 -’ 및 ‘윗-’, ‘위’ 등의 변이형들, 제13항은 한자 ‘구’(句)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의 ‘句’ 발음에 대한 내용 등 모음의 차이에 의한 형태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조항들의 표준어 사정 과정도 이전 시기의 공통의 문헌어를 대상으로 발음의 변화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심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발음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정 작업이 이루어져 ‘모음조화 , ㅣ모음 역행동화’등에서 보듯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발음의 변화를 인정하였다.
  문헌어적 전통 위에서 표준어 작업을 하였음은 나머지 조항들에서도 확인된다 . 제3절의 준말에 관한 내용에서,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 제 14항이나 “준말이 쓰이지 않고 있더라도, 본말이 널리 쓰이고 있으면 본말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 15항의 내용도 이미 정해진 기원적인 원형들을 앞에 두고 그렇지 않은 형태들과 비교하여 표준어 인정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비슷한 발음의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 17항의 단수표준어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두 형태가 모두 널리 사용되는 경우에는 두 형태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제 18항의 복수표준어도 문헌어 중심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제3장은 제1절 고어, 제2절 한자어, 제3절, 방언, 제4절 단수표준어, 제5절 복수표준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자음이나 모음의 차이에 의한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형태론적 구성을 갖거나 기원이 다른 변이형들 중에서 표준어를 사정하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문헌어와 그 관련 어휘들을 사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어 (死語)가 되어 쓰이지 않게 된 것은 고어로 처리한다.”는 제 20항이나,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고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용도를 잃게 된 경우에는 고유어 계열의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 21항, 그 반대로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22항,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제23항, 제25항의 단수표준어나 제25항의 복수표준어 모두 이전의 문헌어를 그 관련 형태들과 비교하여 표준어를 선택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표준어 사정 원칙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제 3장의 제1절 고어’나 제 3장의 제3절 방언’이 별도로 분리되어 제시될 필요가 없다. 표준어 사정 원칙에서 이미 ‘현대’의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표준어 사정 작업이 이 원칙에 따랐다면 모든 어휘의 사정에서 ‘고어’나 ‘방언’으로 간주된 것들은 표준어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 그리고 그 일부 ‘고어’가 사용되지 않게 되었거나 일부의 ‘방언’이 널리 사용되어 표준어로 인정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어휘들을 표준어로 인정하게 된 근거는 다른 표준어 어휘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적용한 결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 말하자면 고어이든 방언이든 표준어 사정 자료로서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의 변이형으로서 심의하고 사정했어야 하는 것이 것이다.7)
  사실 ‘봉’과 ‘난봉’, ‘낭’과 ‘낭떠러지’, ‘설거지 -하다’와 ‘설겆다’, ‘자두’와 ‘오얏’ 등은 고어와 현대어의 차이로 심의할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서울말의 단어로서 받아들여 두 형태를 모두 인정할 것인지 하나만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수표준어와 복수표준어의 접근 방식과 다르지 않다. ‘난봉’과 ‘봉’, ‘자두’와 ‘오얏’ 류의 표준어 사정의 근거를 말한 ‘제 20항 고어’에서 ‘난봉’과 ‘자두’ 한 형태만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나, ‘제 4절 단수표준어’의 ‘제 25항’의 ‘고구마’와 ‘참-감자’,‘담배-꽁초’와 ‘담배-꼬투리/담배-꽁치/담배-꽁추’에서 ‘고구마’와 ‘담배-꼬투리’ 한 형태를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제 3절 방언 제23항’에서 ‘멍게’와 ‘우렁쉥이’, ‘물 -방개’와 ‘선두리’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것도 ‘제 4절 제26항 복수표준어’에서 ‘가뭄’과 ‘가물’, ‘개숫-물’과 ‘설거지-물’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것과 차이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표준어 사정 원칙에 제시된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나 <표준어 규정>의 각 항목에 제시된 자료의 수집·분류·심의의 과정이 , 공식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사용해야 할 구어로서의 표준어를 사정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나 ≪큰 사전≫에는 자료 수집의 과정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8) 그 자료들은 대부분 표기를 전제로 한 어휘 형태 중심의 자료들이란 점에서 맞춤법과 관련되는 공통의 문헌어를 정하기 위한 관련 자료들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발음의 변화에 따른 관련 어휘나, 같은 의미를 갖는 여러 형태들의 구어적 변이형들을 모아 놓고, 문헌어적 전통을 갖는 형태들과 그렇지 않은 형태들 중에서 표준어를 선정하되, 대체로 이전의 문헌어를 표준어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정은 <표준어 모음>(1990)이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의 작업도 구어 자료를 수집하여 표준어 여부를 심의한 것이 아니라 , 사전들 간에 차이 나는 표제어를 대상으로 작업을 했던 것도 이러한 표준어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어의 표준어 자료는 대체로 어휘에 집중되어 있으며 , 어휘 중에서도 고정된 형태의 독립형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어휘라 하더라도 그 어휘가 갖는 언어학적 제 층위에서의 특징은 사정된 표준어의 사용에 있어서 모두 중요하다. <사정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는 없던 발음 문제는 <표준어 규정>에서 제2부에 추가되어 활용이나 곡용에서 실현되는 표준 발음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규정>에도 여전히 복합어나 합성어를 구성할 때 보여주는 어휘들의 형태론적 특성, 통사적인 제약, 의미 영역의 문제, 억양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는 <규정> 역시 구어로서의 표준어보다는 맞춤법 규정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어로서의 표준어 사정 중심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보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먼저 정해지고, 그리고 <통일안>의 총론 제2항에서 ‘표준어’를 규정하게 된 것도 우연의 소치가 아니다 .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1912)을 이어 받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의 총론 제2항은 표준어 작업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맞춤법의 근간이 되는 표준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업의 선후가 뒤바뀐 것이지만, 이러한 상황도 우리말 표준어가 맞춤법을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이해가 된다. 사실 1988년의 <맞춤법 규정> 작업과 <표준어 규정> 작업도 분과만 달리 하여 동시에 진행되었던 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맞춤법 규정>에서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추어 적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였으므로 , 이러한 <맞춤법 규정>의 원칙대로라면 표준어 규정 작업이 먼저 이루어지고 맞춤법 규정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으나 이 두 분과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됨으로써 표준어 사정 작업이 일부 맞춤법 규정 작업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여, 맞춤법 규정 조항인지 표준어 규정인지 구별되지 않는 조항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표준어 작업은 누구나 정해진 표준어에 맞추어 통일된 방식으로 표기하도록 한 문어로서의 표준어 작업이었던 것이다(이익섭 1983; 9-12). 이러한 관점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나 <표준어 규정>의 표준어 사정 원칙을 표준어 사정 작업에 적용하지 않았으면서도 표준어 사정 작업이 결과를 표준어 사정 원칙에 기대려고 하는 문제점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9)
  그러나 표준어 사정 원칙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여건만 갖춘다면 ‘구어로서의 표준어’ 작업을 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10) 구어로서의 표준어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표준어 규정>에 제시되어 있는 표준어 사정의 원칙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 근거에 맞추어 사정할 구어 자료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국어의 사회적·지역적 변이에도 관심을 갖고 , 국어의 사회 방언과 지역 방언의 표지(marker)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과 ‘서울 방언’의 특성이 밝혀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을 선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 이러한 기반 위에서 공식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구어로서의 표준어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논의에서 언급하였지만 , 표준어 사정 원칙대로 한다면, 표준어 사정 작업에는 원칙에 제시된 세 가지 기준이 다음과 같이 동시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4)11)
  (4)는 현대라는 시대적 기준 위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울 방언이 표준어로 사정되어야 함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표준어의 시대적 기준으로서 현대, 지역적 기준으로서 서울 방언, 사회적 기준으로서 ‘교양 있는 말’이 독립적으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표준어 기준을 모두 한꺼번에 적용한다면, 그 말은 표준어가 ‘널리 사용하는’의 양적인 기준보다는 ‘사회에서 인정하는’의 질적인 기준위에서 선정되어야 함을 뜻한다 . 언어 변화가 하류층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특성을 생각하면, ‘널리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하다 보면 언어 변화를 보다 중시하는 관점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2) 그러므로 표준어 사정 원칙에서 표방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표준어를 사정하는 작업은 <규정>에 자주 보이는 ‘널리 사용하는’, ‘A보다 B를 널리 사용하는 경우에는’ 등의 양적인 기준보다 ‘①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② 현대, ③ 서울말 ’의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질적인 기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언어의 무의식적인 변화는 주로 하류층에서부터 시작되어 다른 집단으로 확산된다. 교육을 받지 못하여서, 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의 변이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류층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변화를 인정하여 널리 확산되었다고 하여 표준어를 자주 바꾼다면, 구어로서의 표준어는 안정성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는 적어도 서울말의 지역적·사회적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심의·사정된 ‘공통의 문헌어’ 중심의 표준어이지만, 이러한 표준어는 문어적 형식으로나마 표준어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해 왔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문헌어가 보수적인 특성을 지니고, 문자로 표기되어 발화에 대한 고정된 시각적 형태로 근거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학교 교육에서나 방송 매체에서도 이러한 문어적 근거를 바탕으로 표준어에 접근하고 있으며, 구어로서의 표준어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표준어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현행 표준어는 준표준어라 할 만하다. 13) 엄밀한 의미에서의 표준어는 음성(음소)에서부터 억양에 이르는 언어학의 제 층위에서 구어의 특성을 고려하여, 표준어 사정의 세 기준을 모두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구어로서의 표준어’를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표준어라고 한다면 , 현행 표준어는 이러한 표준어와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표준어를 방언 화자들이 사용한다고 할 때, 그 표준어는 화자들의 제1언어(화자의 방언)는 아니지만, 자신의 제1언어로 인해서 몇 가지 운소적 특질에 있어서는 아직 그 방언의 자취를 떨어뜨리지 못한 분절음 차원의 공통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4. 마무리

  이상에서 국어 표준어 사정 기준과 표준어의 성격을 논의하였다 . 논의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서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Ⅱ장에서는 표준어 사정의 기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 <규정>의 ‘교양 있는 사람들’은 <통일안>의 ‘중류사회’와 같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언어를 구사하는 중류 계층을 의미하지만, 우리 사회에 <통일안>의 ‘중류사회’를 상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꾼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 기준을 유명무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표준어 사정의 시대적 기준으로서 ‘현재’는 자료를 수집하여 표준어를 사정하는 시점에서 판단하는 현대로 간주하면 ,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현대’라는 기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논의하였다 . 지역적 기준으로서의 서울말은 서울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은 서울 방언 내에서도 화자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발견되기 때문에 서울 방언의 근거를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3장에서는 <표준어 규정>의 사정 내용을 통하여 현행 표준어의 성격을 논의하였다. <표준어 규정>의 사정 대상은 대체로 ‘공통의 문헌어’로서, 표준어 사정 작업은 이 ‘공통의 문헌어’를 중심으로 ‘발음에 차이가 있는 변이형’과 ‘동일 의미를 갖는 다른 형태들’을 대상으로 표준어를 정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보다 먼저 이루어지고, <맞춤법 규정>과 <표준어 규정>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 것은 ‘맞춤법 규정’의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그 동안의 표준어 작업이 ‘맞춤법’과 관련되는 공통의 문헌어를 중시한 문어로서의 표준어 사정 과정이었음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문어로서의 표준어도 우리 사회에서 그 기능을 나름대로 잘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공식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구어로서의 표준어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필요하다. ‘구어로서의 표준어’를 정하기 위해서는 표준어 사정 기준을 표준어 작업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서울말’과 ‘교양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표준어 사정의 기준을 구체화하는 한편, 어휘 중심으로 되어 온 표준어 사정 작업의 범위를 음운론적 특징, 형태론적 특성, 통사적인 특성, 의미론적 특성, 나아가 문장의 억양에 이르기까지 언어학적 제 층위의 구어적 상황으로 넓히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공식적인 상황에서 사용해야 할 구어로서의 표준어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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