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생활논단】

상황과 말씨의 선택
−신문기사 제호의 간접 명령형을 중심으로−

고영근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1. 몇 개의 사례를 들어 본다

  거리의 교통표지판이나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지상을 대하면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국어교육이 지난 반세기에 걸쳐 각급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시행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시킬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반성하는 일이 많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월드컵 경기장 앞에는 계룡산과 공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공주 방면의 표지판으로‘지공주’라는 텍스트가 붙어 있는 것을 수년전에 보았다. 이는 일제 시대의 ‘至公州’를 그대로 한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공주 방면’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수년전 어느 지상 (誌上)에 쓴 일이 있다. 그 사이에 시정(是正)하였는지 모르지만 이런 표지판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글전용이란 한자어를 한글로 바꾸는 것이 아님을 직시(直視)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 표현을 우리말로 바꿀 때에 자신이 없으면 권위 있는 기관 이를테면 국립국어연구원 같은 데 자문(諮問)을 의뢰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의심의 연결어미 ‘-(으)ㄹ지, -는지, -던지’를   관형사형어미‘-(으)ㄴ, -는, -던’과 의존명사 ‘지’와의 통합구성으로 보아‘흰 지, 보는 지, 가던 지’로 띄어 쓰는 일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허웅 박사의 문법서 ꡔ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ꡕ(샘문화사, 1995)에 ‘지’를 의존명사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과거형이‘본 지 (모르겠다)’가 아니고‘보았는지 (모르겠다)’이기 때문에 이는 관례와 같이 단순한 연결어미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흰지 … , 보는지 …, 가던지 …’와 같이 붙여 써야 한다. 과거형으로‘본 지 (모르겠다)’가 보편화되면 그때는 별수 없이 의존명사로 보아 띄어 써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도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는지’를 의존명사로 본다면 하게체의 의문형 ‘가는가’에 나타나는‘가’도 의존명사로 보아야 한다. ‘듯, 양, 척’이 의존명사인 까닭은 이 말 앞에‘본 듯, 본 양, 본 척’과 같이 과거 내지 완료의 기능을 표시하는 관형사형어미 ‘-(으)ㄴ’이 오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거나 병원을 방문하면 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새로운 텍스트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 귀에 들리기도 한다.‘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와 같은 텍스트는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에서 듣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관형사형이 시제에 따라 구분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동작이 끝났거나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에는 ‘간 사람’과 같이‘ -(으)ㄴ’을 선택하고 현재의 사건이나 진행 중인 동작을 이야기할 때에는 ‘가는 사람’과 같이 ‘-는’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때에는‘갈 사람’과 같이‘ -(으)ㄹ’이 선택되기도 한다.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확정적이거나 보편적인 사실에 관련되면 ‘가는 사람’과 같이 ‘-는’을 사용하는 것이 어감에 더 어울린다. 앞의 지하철의 안내 방송은 확정적 내지 보편적인 사실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내리시는 … ’으로 고쳐야 한다. 누구든지 ‘내리시는 문’이 더 자연스럽다고 한다. 실제로‘무임승차권을 교부 받으시는 분들은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의 ‘받으시는’과 같이 ‘-(으)ㄹ’이 아닌 ‘-는’을 붙이는 예가 보인다. 지하철 공사는 지하철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텍스트들을 문법과 언어대중의 어감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다시 다듬어야 한다. 주차장의 ‘出口’와 ‘入口’의 다듬은 말이 ‘나오는 곳’과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 ‘내리시는 … ’이 옳다는 것을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진찰실 앞으로 들어오실 분’,‘여기서 순서를 기다리실 분’과 같은 텍스트도 당연히 ‘… 들어오시는 분, … 기다리시는 분’으로 다시 다듬어야 한다. 높임의‘ -(으)시-’를 끼워 넣는 것도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지하철의‘내리시는 문’은‘내리는 문’이 더 상황에 어울린다. 앞에서 든 표현들은 문법지식의 과잉 적용이 우리말의 자연스런 궤도(軌道)를 허물어뜨리는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어떤 말씨를 고립시켜 놓고 보면 문법적으로 하등의 잘못이 없으나 상황에 따라 바른 텍스트가 되기도 하고 그른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디 가십니까’란 말은 문법적으로는 조금도 흠잡을 데 없다. 웃어른에게 이 말을 사용하였다면 바른 텍스트가 되지마는 같은 또래의 벗에게 건넸다면 바른 텍스트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마치‘갓길 운행 금지’라는 표지판이 고속도로에 놓이면 잘 어울리지마는 국도에 놓이면 어울리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유명사에 ‘님’이 붙은 ‘홍길동님’이 편지 봉투에 쓰이거나 은행이나 종합병원에서 고객들이나 환자를 부를 때에 사용되었다면 그런 대로 어울리나 사사로운 대화에서는 ‘홍길동씨’로 금방 바뀌어 버린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씨 가운데는 문법적으로는 하등 잘못이 없지만 상황에 따라 어울리지 않는 일이 많다. 상황에 어울리는 텍스트를 가려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주로 신문지상이나 방송매체 등의 제호 (題號)에서 사용되는 명령형이 올바로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내가 직접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 허실(虛實)을 검토해 보고 아울러 그 개선책을 제안해 볼까 한다.


  2. 직접 명령형과 간접 명령형을 어느 정도 잘 골라 쓰고 있을까

  명령은 상대방에게 화자의 뜻에 따르도록 지시하는 언어행위이다. 우리말에는 말듣는 상대방의 지위의 높낮이에 따라 명령형 어미가 여러 가지로 선택된다. 웃어른에게는 ‘-십시오’를, 후배나 부하 직원을 높일 필요가 있을 때에는‘하시오’를, 장성한 제자나 사위에게는 ‘하게’를, 손아랫사람에게는‘해라’를 사용한다. 이렇게 상대방의 면전에서 화자의 뜻에 따르도록 지시하는 명령을 직접명령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상대방이 단수이기 때문에 단독명령이라고 부르거니와 화자와 상대방이 합동이 되면‘하시지요, 합시다, 하세, 하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 청유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동명령이라 불러야 옳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행위를 자세히 관찰하면 명령행위가 간접적으로 수행되는 일이 많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교사가 반장인 ‘영수’에게 결석이 잦은‘정호’의 집을 찾아 가 보라고 시켰다면 그 교사는 영수에게 ‘영수야, (요즈음 정호가 결석이 잦으니) 집으로 한번 찾아 가 보아라’라고 말하였을 것이고 정호네 집을 찾아간 영수는 정호에게 ‘선생님이 네 집을 찾아 가 보라고 하셔서 오늘 이렇게 찾아왔다’라고 찾아온 연유를 대었을 것이다. 뒤의 텍스트는 직접인용인 앞의 텍스트를 간접인용으로 바꾼 것인데 공교롭게도 두 인용문에 사용되는 명령형의 형태가 달리 실현된다. 그런데 간접인용에 사용되는 명령형이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통보상황, 이를테면 신문기사의 제호, 시위군중의 구호, 플래카드, 표어, 책의 제목 등에 그대로 사용된다.
  다음 예문을 보기로 한다.
(1) 시민들은 시위군중에게 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하였다
  위의 문장이 사설이나 기사 가운데 한 구절이라면 신문 편집자는 그 제목을 다음과 같이 달 수 있다.
(1') 시위군중은 질서를 지키라
  설사 기사에 간접명령이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와 같이 명령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면 표제에 (1')와 같이 간접 명령형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남북에서 나온 국어사전을 보면 간접명령의 경우, 자음 받침 아래에서는‘ -으라’, 모음이나 ‘ㄹ’ 받침 아래에서는‘ -라’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예를 몇 가지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2) 가. 보라(고), 뛰라(고), 오라(고), 하라(고), 고르라(고), 지르라(고) …
나. 놀라(고), 울라(고), 달라(고), 말라(고), 불라(고) …
다. 잡으라(고), 먹으라(고), 깎으라(고), 들으라(고), 물으라(고), 도우라(고), 지으라(고)
        
  (2가)는 간접 명령형 어미 ‘-라’가 모음 아래에서 선택되는 예이고 (2나)는‘ㄹ’ 받침 아래‘ -라’가 선택되는 예이며 (2다)는‘ㄹ’ 밖의 받침 아래에‘ -으라’가 선택되는 예이다. 그러니까‘ -라’는‘ㄹ’ 받침이나 모음 아래에서,‘ -으라’는‘ㄹ’ 밖의 자음 아래 사용된다고 용법을 명세할 수 있다.
  ‘-(으)라’의 용법에 대하여는 현재 한국어의 사전 가운데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ꡔ연세한국어사전ꡕ의 설명이 참고가 된다.
(3) 라4 … ① 성경이나, 신문, 문제를 제기하는 글 등에서 정해지지 않는 여러 사람 들을 상대로 행동을 요구함을 나타냄. ☞ 항상 기뻐하, 쉬지 말고 기도하, 범사에 감사하/ 독자들이여, 생각해 보/ 눈을 들어 대자연을 보!/ 논증들을 구분하고 전제와 결론을 찾으/ 기대하시, 개봉 박두
②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는 뜻을 나타냄. ☞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잘 간직하/ 아들아, 내가 죽더라도 네 어머니를 존경하고 극진히 그 말씀을 따르/ 네가 죽을 때까지 우리 임금에게 충성하라/ 병사들은 나를 따르! ‘ -라’는 받침 없는 어간의 뒤에,‘ -으라’는 받침 있는 어간의 뒤에 쓰임
        
  (3)을 보면 받침이 없을 때는‘ -라’가 선택되고 받침 아래에서는 ‘-으라’가 선택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이점은‘ㄹ’ 아래의 용법이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인데 이는 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사전에 사용법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신문, 방송매체, 표어, 광고물 등에는 이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다음 예들은 내가 지난 수년 동안 본 일간신문에서 뽑아낸 예이다. 이들 자료를 보면 간접명령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해라체의 명령형 ‘-어라/-아라/-여라’를 사용하고 있다.
(4) 가. 교장 고소하게 부모 도장 받아와라
나. 탈당 위원들은 行先地를 밝혀라
다. 한나라 脫黨 선언한 5人 “민주 신주류도 빨리 나와라”
라. 시정 연설 대통령이 직접 해라
마. 삼성생명 나와라
바. 다시 ‘서울대 개혁론’을 말한다
“서울대 체질 개선해라” 요구 다양 ··· ‘개혁론’ 정책적 공론화 미흡
사. 국제사회 합의 존중해라
  (4가)의“교장 고소하게 부모 도장 받아와라”는 다음과 같은 기사문을 근거로 하고 있다.
(4가') 제주도의 한 고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채택한 교장을 고소하려고 2학년 학생들에게 학부모 위임장을 받아오도록 했다고 한다
  (4가')의‘… 받아오도록’에 명령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명령형으로 바꾼 것 같은데 이는 ‘받아오라’로 고쳐야 한다. ‘받아와라’는 규범에 맞는 명령형이 아니다. 직접 명령형으로 바꾸려면‘받아오너라’가 옳다. 이런 말씨는 어린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텍스트로서 극도의 구어체이며 표준형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
(4나)의“탈당 위원들은 行先地를 밝혀라”는 다음의 기사와 관련이 있다.
(4나') 그렇게 자신의 이념과 행선지를 분명히 밝히고 나서는 것이 탈당위원들이 목표로 하는 ‘전국 정당’으로 가는 길이기도 한다
  (4나')에 ‘밝히다’를 중심으로 역시 명령의 의미가 스며 있다고 보아 명령형으로‘ … 밝혀라’를 뽑아 낸 것으로 보이나 이 역시 ‘밝히라’로 바꾸어야 한다.‘밝혀라’는 원래 해라체로서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명령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면 기자가 상위자이고 탈당위원들은 하위자란 말인가. 국어를 정상적으로 배운 사람이라면 옳고그름을 누구든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nbps;(4다)의 “민주 신주류도 빨리 나와라”는 다음의 기사에서 뽑아 낸 것이다.
(4다') 탈당 의원들은 민주당 신주류에 대해서는 “국민통합이란 시대적 대의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만 바라보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라”며 탈당을 촉구했다
  (4다)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민주당 신주류를 향하여 내 뱉은 말을 간접 명령형으로 바꾼 “ … 떨쳐 일어나라”를 극도의 구어체 명령형인 ‘나와라’로 제호를 삼은 것이다. 앞의 (4가)와 같은 예이다. 마땅히‘나오라’로 바꾸어야 한다.
  (4라)의 “시정 연설 대통령이 직접 해라”는 다음 기사문에서 추출한 것이다.
(4라')  박관용 신임 국회의장은 9일“국회의 자존을 세우겠다”며 그 방안의 하나로 9월 정기 국회에서 국무총리가 대독하던 시정연설을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한다고 말했다
   
  (4라')는‘직접 해야 한다’라는 당위평서문을 ‘해라’로 바꾸었다. 국회의장은 상위자이고 대통령은 하위자이기 때문에‘해라’를 썼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직접 하라”로 바꾸어야 한다.
  (4마)의 “삼성생명 나와라”는 다음의 기사문의 내용을 중심으로 가공한 것이다.
(4마') 박경수 감독은“우리 선수들이 챔피언전 상대인 삼성생명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상대방선수들의 기량이 좋지만 약점이 무엇인지 보여 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4마')의 기사문은 평서문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박경수 감독의 말에 삼성생명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고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보이기 위하여 명령형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앞의 (4다)와 같이‘나오라’로 바꾸어야 한다. 신문의 제호에 왜 이런 비표준형이 등장하는지 나는 아직 모르고 있다. 국어교육을 잘못 받은 것인지 아니면 권위 있는 분들의 잘못된 자문에 그 탓을 돌려야 할지 아니면 언어변화에 순응하는 젊은 기자들의 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바)는‘한시적 학부 폐지론’,‘역할분담’과 ‘특화론’,‘민영화론, 폐교론, 교수양성대학론’의 몇 개 주제를 종합한 제호이다. 이 역시 앞의 (4라)와 같이‘개선하라’로 바꾸어야 한다. 대중이 서울대학교나 정부 당국에 요구하는 간접적인 명령의 상황인 것이다. (4사)의‘존중해라’는 2003년 7월 10일 KBS 7의 저녁 9시 뉴스의 자막제호이다. (4라, 4바)와 같이‘ … 존중하라’로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매체에서도 이런 잘못된 텍스트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4)와 같은 예는 신문지상의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 두고 괄호 안에 올바른 형태를 보인다.
(5) 실속 있는 내 집 마련대책을 찾아라(찾으라)/ 그러러면 빈 라덴 넘겨라(넘기라)/ 남은 돈이 본전 손해는 잊어라(잊으라)/‘李‧盧 반미 문제’ 정면으로 다뤄라(다루라)/신촌엔 불황이 없다! 대학가를 노려라(노리라)/ 믿을 수 있는 중개 업소와 전속 중개를 맺어라(맺으라)/ 먼저 테러원인과 싸워라(싸우라)/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되라)/생화학 테러, 근본대책 세워라(세우라)/ 비정규직 기금 회사서 내놔라(내 놓으라)
  다음 텍스트는 지문 가운데 직접 명령형이 사용된 예이다.
(6) 아이야 저 가을을 보아라. 토실한 밤송이 속에서 햇살을 기다리는 저 풍성함을 보아라. 포천과 철원을 가르는 밤숲에서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원래 지문은 직접인용문을 간접인용문으로 바꾼 텍스트이다. 전체가 간접 인용문인 이상‘보아라’는 모두‘보라’로 바꾸어야 한다. 호격을 취한 ‘아이’가 낮춤의 대상이라고 하여 ‘보아라’가 옳다고 할지 모르나 대화가 아닌 지문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보라’가 옳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문에 간접 명령형을 사용하였다.
(6') 고운 나비의 날개 …… 비단결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보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잘 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어린이 예찬, 1924년의 작품).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국어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문필가들이 우리말에 대하여 느끼는 어감이나 직관이 조선어교육을 올바로 받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문필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신문이나 방송매체의 제호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바른 어형을 선택한 예도 드물기는 하지만 보인다.
(7) 가. 舊주류“南北 단절땐 청와대 책임”
소장파 일부 “대통령은 黨 떠나라”고 요구하는 등 당 내분이 표면화될 조짐마저 보였다
나. “8% 수입車 관세 더 낮춰 달라
美 상공회의소 ‘한미재계회의 백서’ 발표, 노동시장 유연성. 스크린쿼터 해결 요구
다. 아프칸 “외국인들 당분간 떠나 있으라
라. 신용대출 금리 제각각, 우대 금리 싼 곳 찾으라
마. 인기절정 소형 평형을 주목하라
바. “환경 지키자” 수력발전으로
“사용하지 않는 방의 전등을 끄고 실내 온도를 낮추라”며“일반가정은 ··· 연료를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 “증거 있다면 대라” 항의
아. 거리를 두고 사귀라
자. 문턱 넘으려면 눈 낮추라
  (7가)의‘떠나라’는 명령형 어미의 첫 머리와 어간의 모음이 같은 예이다. (7사)도 비슷한 예이다. 사실 이런 예는 간접 명령형과 직접 명령형의 형태가 같이 실현되기 때문에 글 전체의 흐름을 보기 전에는 어느 명령형을 뜻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최근의 기사 제목이‘-어라/-아라’를 취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아라’가 생략된 직접 명령형일 가능성이 높다. (7나)는 요청을 의미하는‘주다’의 간접 명령형이다. 직접 명령형은 ‘다오’인데 이 경우는 직접 명령형을 쓰지 않고 간접 명령형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7라)의‘잡으라’는 보통‘잡아라’라는 직접 명령형을 사용하는데 이례적으로‘잡으라’를 사용하였다. 영화의 제목에 흔히 등장하는‘ 007을 잡아라’도 같은 예이다. (7마)는 한자어의 어근‘주목’ (注目)에 접미사‘하다’가 붙은 것이다. 이런 예는 국한문혼용을 하던 때부터 간접 명령형을 취하여 왔는데 최근에 와서 한글전용의 기사가 보편화되어 감에 따라서 (4라)에서 보듯이 직접 명령형을 선택하는 일이 더러 보인다. (7마)와 같이 간접 명령형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7바)의 ‘낮추라’, (7아)의‘사귀라’는 모두 간접 명령형으로서 바른 어형의 선택이다.
  (7)의 예를 (4), (5), (6)과 비교하여 보면 바른 어형의 선택이 그렇지 않은 선택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신문기자를 비롯하여 오늘날의 문필가들은 직접 명령형과 간접 명령형을 가려 사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3. 간접 명령형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신문지상의 간접 명령형이 어떠한 과정을 밟아 형성되고 발전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조선시대로부터 개화기를 거쳐 교민사회 및 북한의 신문자료를 가지고 검토해 보기로 한다.
  아래의 예는 조선시대의 자료이다. 조선시대에는 한글이 공용문자의 자격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간접명령문이 사용된 자료가 많지 않다.
(8) 가. 너희 서로 일러 그 전으로 수이 나오라(선조대왕의 교서)
나.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동학격문)
  (8가)는 왜적에게 협력한 백성들에게 자수하고 나오라는 취지의 왕의 교서이다. 그 상황이 교서를 통한 간접적인 의사전달이기 때문에 그 형태도 간접 명령형을 취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당시는‘오라’가 직접명령문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으나 위의 예는 (3② )에 준하는 예문으로서 간접 명령형으로 해석된다. (8나)의‘일어서라’ 역시 간접 명령형이다. (3① )에 준하는 예로 보인다. 수신자는 복수 청자인 민중이다. 그러니 위의 (8)을 통하여 전통시대에도 (3)의 두 가지 기능을 충족시키는 간접 명령형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예는 개화기에 보이는 간접 명령형의 예이다.
(9) 가. ~ 배재학당 한미화 활판소에 와 사라(독립신문 1896. 4/1)
나. 虛飾의 惡習을 打破할지어다(매일신보, 1910)
       
  (9가)는 언더우드의 ꡔ한영문법ꡕ과 ꡔ한영사전ꡕ의 광고문의 일부인데 간접 명령형‘사라’를 사용하였다. 관점에 따라서는 어간‘사 -’에 해라체의 명령형 어미 ‘-아라’가 붙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복수 독자인 독자들에게 이런 말씨를 선택할 까닭이 없다. (8나)와 같은 성격의 텍스트이다. 광고문이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인 만큼 이러한 양식의 광고문은 서양문물의 도래와 함께 생긴 것이 틀림없으며 이는 (8나)와 같은 전통적인 간접 명령형의 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에는‘사 가시오’라고 하여 하오체를 사용하는 일도 많았다. (9나)는 당위평서문으로 명령문의 효과를 나타내는 예이다. 이런 예는 전통시대의 언해텍스트에서 흔히 대하는‘ -ㄹ 디어다’의 변화형이다. 개화기의 간접 명령형에는 전통시대의 당위평서문의 투가 엄존하고 있었다.
  다음 예는 일제강점기에 보이는 간접 명령형의 예이다.
(10) 가. 敎育에 徹底하라 첫째 學校를 세우고 둘째 就學에 熱心하라(동아일보 1922. 1/5)
나. 靑年의 氣槪가 如何오. 無意義한 生보다는 有義한 死를 取할지어다(동아일보 1922, 1/9)
다. 社會事業의 發達을 期하라(매일신보 1926)
라. 새 힘을 짓자(동아일보 1928)/ 새로운 길을 開拓하자(동아일보 1928)
마. 敎員待遇를 改善코 療養所를 設置하라(만선일보 1939)
  (10나)는 일제강점기에도 당위의 평서형어미‘ -ㄹ지어다’가 잔존하고 있었음을 증언하는 예이다. (10가, 다, 마)는 당시 신문의 간접 명령형이 한자 어근에 간접 명령형의 접미사 ‘하라’가 붙어 사용되는 일이 보편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대개‘하라’ 명령형을 사용하는 경우는 그 어근이 한자어이며 이 경우는 오랫동안 고정된 틀을 고수하여 왔다. 한글전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한자어 대신 그에 맞먹는 고유어를 선택하게 되니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직접 명령형을 사용하게 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하였다. (10마)의 출전인 <만선일보>는 당시 만주지역의 교민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었으나 반도 안의 신문과 같이 국한문혼용을 하고 있었으며 제호를 다는 방식도 반도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0라)의 두 예는 신문기자와 복수의 청자가 이해를 같이할 때에는 청유형을 사용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예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 예는 미주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의 예이다.
(11) 가. 商工을 急히 振興할 일(공립신보/신한 민보 1907)
나.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예비하라(신한민보, 1918)
       

  (11가)는 개화기때부터 얼마전까지 흔히 보던 명사구에 기댄 간접명령의 예이다. 요즈음은‘〜ㄹ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11나)는 당시 간접 명령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던 한자어 어근 아래에 접미사‘하라’가 붙는 예이다. <신한민보>는 한글전용을 하되 어근을 고유어로 고친다든지 하는 일을 별로 볼 수 없다.
  다음 예는 연해주에서 발행되던 한인신문이었던 <선봉>에서 뽑은 간접 명령형이다.

(12) 가. 새 농촌을 개척하고 생활의 터를 잡으라(1925. 2/13)
나. 아이들에게 남녀동등생활을 가랏쳐 주라(1925. 3/8)
다. 꼴호즈 조직 ꠏꠏ경제적 으로 튼튼케 하라(1932. 34/6)
라. 당 교양사업에 지도를 높이라(1932. 3/6)
마. 농업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자(1932. 3/10)
  <선봉>은 <신한민보>와 같이 한글전용을 지향하기는 하였어도 한자어를 그대로 한글로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고유어로 바꾸는 편집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12다)의‘하라’는 1920년대 초기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한자어 어근의 명령형으로서 지금도 선호되고 있다. (12마)의 ‘발전시키자’는 텍스트 생산자와 텍스트 수용자가 합동일 때 선택되는 청유형으로서 (10라)에서 본 바와 같이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어 왔다. (12가)의‘잡으라’는 요즈음의 한국신문 같으면 (5)에서 든 예와 같이‘잡아라’로 적을 수 있는 것을 이미 1925년에 간접 명령형‘잡으라’를 선택하였다. (12나, 라)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 당시에 신문의 제호로 직접 명령형 ‘주어라, 높여라’ 대신 간접 명령형 ‘주라, 높이라’를 선택하였는지 불가사의 (不可思議)한 일로 보인다. 연해주 한인사회의 정서법 책자가 1930년에 나온 ꡔ고려문전ꡕ인데 그보다 5년 전에 간접 명령형을 바르게 선택하였다는 것은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신문 생산자들의 우리말에 대한 지식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웅변한다고 하겠다.
  다음 예는 북한의 자료이다.
(13) 가. 計劃과 統計事業强化로 增産運動을 保障하자(노동신문 1947. 8/24)
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자(로동신문 2003, 12/25)
다. 방문기 더 높이 날으라(문학신문, 2003. 12/13)
라. 사랑인 줄 아시라(같음, 2003. 12/13)
       
  (12가)의‘保障하자’는 한글전용 이전의 북한 신문에서 청유형이 사용된 예이고 (12나)는 그 최근의 청유형의 예이다. 북한 신문의 한글전용은 단계적으로 실시하다가 1949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13가, 나)는 (10라)에서 본 바와 같이 192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제호이다. 북한신문은 처음부터 명령형보다는 청유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신문 제호에서 명령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간접 명령형을 선택한다. (12다, 라)의 ‘날으라, 아시라’가 그것이다. (12다)의 ‘날으라’는 ‘날라’로 적어야 문법에 맞는데 전통적으로 시 같은 데서는 더러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말은 ‘나르다’를 기본형으로 삼으면‘나르라’를 사용할 수 있다. (12라)의 ‘아시라’는 영화광고에서 더러 대하는 ‘기대하시라’와 같은 예이다.
  북한의 신문 제호는 명령형보다는 청유형을 선호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일이 많다.
(14) 가. “혁명적 정신으로 공사를 힘있게“
나. 민족의 자랑을 잊지 않도록
다. 극우 반동 보수당을 깨버려야 한다
라. 질 좋은 거름을 많이
  (14가)의‘힘 있게’는 명령의 의미가 스며 있는 기사문의 전체 내용을 간추린 제호이다. 이런 경우 남한의 신문에서라면 ‘힘있게 하라’로 표현될 것이다. (14나)의‘잊지 않도록’ 역시 전체의 내용을 간추려서 제호화한 것이다. 남한 같으면 ‘잊지 말라’ 정도로 나타날 것이다. (14다)는 평서문이기는 하나 명령의 의미가 스며 있다. 남한 같으면 ‘깨 버리라’로 나타날 수 있다. (13라)는 남한 신문이라면‘ ~거름을 많이 주라, ~주어야’ 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표현이다.


  4. 마무리 --간접명령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이상 나는 오늘날의 남한의 신문이나 방송 등의 매체에서 사용되는 명령형의 예를 중심으로 그 허실을 검토하고 역사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여 보았다. 직접 명령형을 간접명령문으로 바꿀 때 다른 어미, 이를테면 평서형, 의문형, 청유형은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으나 명령형의 경우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가려 쓰는 데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매체 등에 사용되는 명령형은 역사적인 측면과 공시적 측면에서 그 형성을 설명할 수 있다. 중세어에는 간접인용문과 직접인용문의 형태가 같았다. 직접명령문에 ‘-어-’와 같은 형태가 끼어들지 않은 바 아니었으나 이는 확인법이라는 그 나름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 두 명령문 사이에 틈이 벌어진 것은‘ -어-’가 확인법의 기능을 상실한 데 그 탓이 있다. 그러나 공시론적으로 보면 인용 부사격조사 이하의 ‘고 하다’가 절단되고 조사의 재배치를 거쳐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의 예를 다시 가져온다.
(15) 시민들은 시위군중에게 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하였다.
  (15)에서 인용의 부사격‘고’와 안은 문장의 동사 ‘요구하다’가 절단되고 안긴 문장에서 부사격조사를 취한‘시위군중’이 주제격을 취하여 다음과 같은 형식의 명령문이 형성된다.
(15') 시위군중은 질서를 지키라
  그런데 문제는 (15')와 같은 명령문의 형태를 올바로 가려쓰지 않고 직접 명령형으로 대체하는 데 있다. 그 사이 고유어의 간접명령은 직접 명령형을 선택하는 일이 있어도 한자어의 어근의 경우는‘하라’를 정확하게 사용하여 왔는데 최근에 와서는 (4라)의‘시정 연설 대통령이 직접 해라’와 같이 해라체를 사용하는 일이 눈에 띄고 있다. 해결의 길은 간단하다. (12)의 <선봉>의 예처럼 (2)와 (3)의 규정에 따라‘ -으라’와‘ -라’를 가려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 -(으)라’를 사용해야 할 곳에 ‘-어라’등의 직접 명령형을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으)라’ 명령문이 실제 구어에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어라’의 사용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에 와서 직접 명령형을 사용하는 일이 많은 것도 이런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는 문법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청유형을 사용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신문기사의 제호로 청유형이 1920년대부터 사용되었음을 본 바 있는데 주어명사구, 곧 주체가 생산자와 수용자 합동일 때에는 ‘-(으)라’를 붙이는 것보다 ‘-자’를 붙이는 것이 문법에도 맞고 우리의 어감에 덜 거슬린다. (10라), (12마)가 그러한 예이다. 2004년 3/29일자 어느 일간 신문에 난 채명신 초대 주월군 사령관의 인터뷰 기사의 제호가“교만은 금물 … 이라크 민심을 잡아라”라고 되어 있다. 이는 물론 앞의 (2)(3)에 따르면‘잡으라’로 바꾸어야 한다. 이 제호는 다음과 같은 채 사령관의 발언에서 뽑아 낸 것이다.
(16) “베트남과 동티모르 등지에서 맹활약한 선배 장병들이 일궈낸 성과와 체험을 교훈삼아 현지 주민들을 늘 따뜻하게 대하고 절대 교만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16)은 내용상으로 보아 파병 장병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고 할 수 있으나 한편 생각하면 주체를 텍스트 생산자인 채 사령관과 텍스트 수신자인 파병 장병의 합동으로 본다면 제호를 청유형“ … 민심을 잡자”로 달 수도 있다. 다음 예는 작년 3월 어느 일간신문에 보도된 표어 성격의 예이다.
(17) 가. 남에게만 맡기지 말고 엄마가 직접 챙겨라(챙기자)
나. 먼저 자신감을 심어줘라(심어 주자)
다.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를 유발시켜라(유발시키자)
라. 인내심을 가르쳐라(가르치자)
마. 집중력을 길러줘라(길러 주자)
바. 공부계획을 세워 습관처럼 공부하게 만들어라(만들자)
사. 저학년때는 기본적인 학습기능을 자동화시켜라(자동화시키자)
  (17)은 엄마가 꼭 알아야 할‘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는 실천 10계명’중 몇 가지를 을 들어 본 것이다. 이런 경우 주어명사구는 텍스트 생산자와 독자인 세상의‘엄마’로 볼 수 있으므로 괄호 안의 청유형이 더 어울린다.
  둘째는 명령의 의미가 스며 있는 연결어미 ‘-어야, -도록’을 간접 명령형 대신에 어간에 붙일 수 있다. (16)의 제호‘… 잡아라’는‘ … 잡아야’ 또는‘잡도록’으로, (1')의‘시위군중은 질서를 지키라’는 ‘ … 지켜야, … 지키도록’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14나)의 예가 간접명령의 예로 쓰이고 있다. 고성환 박사의 ꡔ국어명령문에 대한 연구ꡕ(2003)을 보면 뒤의‘ -(으)ㄹ 것’과 함께 ‘-도록’을 명령형 어미로 간주하고 있다.
  셋째는 명령의 효과를 지니고 있는 명사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10)에서 든‘진흥할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로 이런 표현은 게시판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으)ㄹ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명령형 어미에 속한다. 앞의 (1')을‘질서 유지를 요구’로 표현한다면 이는 명사구에 기댄 표현이다.
  넷째는 (14가, 라)와 같이 명령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표현을 가공하는 것이다.‘질 좋은 거름을 많이’라고 제호를 달아도 텍스트 수신자는 텍스트생산자가 자신들에게 명령하는 텍스트라고 이해한다.
  위의 네 가지 대안은 차선책이지 최선책은 될 수 없다. 최선책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간접 명령형 어미‘ -(으)라’를 앞의 (2)(3)의 규정에 맞게 가려 쓰는 일이다. 내가 지적한 잘못은 신문이나 방송 제작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각종 광고물과 인터넷상의 우리말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혼탁의 극을 치닫고 있다. 우리말에는 일상생활에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입말도 있고 문장에서만 어울리는 글말도 있다. 내가 든 간접명령문은 글말에 어울리는 말씨다. 기사문 등 글말을 작성할 때에는 글말의 문법에 맞는 말씨를 잘 골라 쓰는 지혜를 창출하여 우리말의 문법을 더 이상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어문법에 대한 바른 지식의 보급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