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1)


홍재성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

한국어 동사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앞으로 세 번에 걸쳐, 한국어 문장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인 동시에 개방적 대어휘부류인 한국어 동사가 보여주는 주요 언어적 양상들이 소개될 것이다. 첫 번째 글에서는 한국어 품사 체계 내에서 동사의 정의 문제, 동사와 다른 품사들과의 관계, 그리고 한국어 동사 및 동사 어휘부의 형태론적 구조를 기술해 보기로 한다. 한국어 동사의 통사론적·의미론적 특성과 분류에 대한 자세한 기술과 기능에 따른 동사 유형(본동사/보조동사/대동사/숙어동사 등등의 구분)의 문제 등은 각각 이어지는 글에서 차례로 다루어질 것이다.
    1. 한국어 동사의 정의
    1.1. 의미적 기준의 문제
    전통적인 문법 기술에서 동사를 '행위'나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부류라고 의미적/개념적으로만 정의하는 관행의 문제점은 언어학자들이 계속 지적하여 왔는데, 그러한 문제 제기는 한국어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문제는 한국어 동사가 행위나 상태 변화로서의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 한편으로 행위나 상태 변화의 의미가 동사에 의해서만 어휘화되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어긋나다, 일치하다는 1.3에서 논의되는 바와 같이 명백히 동사로 한정되지만, '행위'나 '과정'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고, 평행하다, 모자라다는 동사/형용사의 두 가지 범주적 특성을 다 갖고 있는데, 동사적 용법의 경우에도 형용사와 같이 '상태' 또는 '속성'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또한, '행위'나 '과정'은 싸움, 용해, 현대화 등등 많은 명사로 어휘화될 수 있다.
    동사의 의미적 특성을 일반적인 논의의 수준에서 간략히 언급해 보기로 하자.
    인간은 무엇보다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 소통을 한다. 언어적 소통은 아!, 저런!과 같은 외마디(간투사/감탄사)로, 또는 맹견주의, 빌어먹을 놈!과 같은 단어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흔히는 주어+서술어, 또는 주어+보어+서술어로 짜여지는 문장을 가장 기본적인 표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 문장은 '누가/무엇이 어떠하다'거나 '누가/무엇이 누구를/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등의 다양한 세계의 사태(state of affairs 또는 situation)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사태는 그것을 사태로서 구성되게 하는 특징적 부분―'싸우거나 읽는' 행위 또는 '응고되거나 현대화되는' 과정, '아름답거나 하얗거나 또는 아프다'는 속성이나 상태―과 그 사태의 참여자로인 '싸우는 사람'이나 '응고되거나 현대화되는 대상', 또는 '아름답거나 하얀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고, 논리 의미적 관점에서 이 구분은 각각 술어(predicate)와 논항(argument)에 대응된다. 사태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논항과 술어의 관계로 표상될 수 있으며, 이 관계는 흔히 술어-논항 구조로 지칭된다.
    술어와 논항의 개념적 구분은 대체로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한 많은 언어에서 술어는 동사나 형용사 부류로 실현되고, 논항은 명사로 실현된다. 또한 행위, 과정, 상태 또는 속성은 술어의 기본적인 의미 유형이 된다. 따라서 동사는 의미적으로 술어를 어휘화한 단어 부류라는 판단이 널리 유포된 것이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지적하지만, 술어는 동사로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형용사, 그리고 명사(앞에서 인용한 싸움, 용해 등이 그 사례가 된다. 이러한 술어성 명사를 술어명사로 지칭한다)로도 투영될 수 있는 것이며, 이 점은 한국어뿐 아니라 많은 여러 언어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어 동사가 행위/과정/상태/속성을 표상하는 점에서 술어의 어휘적 투영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동사를 오로지 술어성으로만 정의하고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술어성은 동사가 형용사 그리고 일부 명사와 공유하는 의미적 특징인 까닭이다.
    1.2. 통사적 기준
    언어적 소통의 가장 핵심적 측면 중 하나는 여러 사태를 술어-논항 구조로 분석하여, 이를 언어화하는 것이다. 언어화의 요체는 몇 가지 측면이 있으나 무엇보다 (개념) 세계의 모든 측면을 수많은, 그러나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의 제한된 유형의 불연속적(discrete)인 언어 요소(단어나 형태소)로 표상하고, 이들 요소를 결합하여 구(phrase : 명사구, 후치사구 등)를 이루고, 다시 구를 결합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데에 있다. 대다수의 언어는 사태의 참여자/논항은 명사구들로 대응시키고, 이들을 술어적 요소로 한데 묶어 문장화하는 것이다. 사태의 개념적 표상으로서 술어-논항 구조는 문장으로뿐만 아니라 명사구로 실현될 수도 있다(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그러나 구와 문장 두 가지 표현 단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일반적인 소통 상황에서 사태의 표상은 문장화에 의지하는 것이 인간 언어의 특징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흔히 관찰이 되듯이, 문장이 구성되는 데에는 동사의 역할이 필수적이고 핵심적이다. 이러한 지적이 함의하는 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ㄱ. 동사 없이는 문장이 구성될 수 없다.
ㄴ. 주어/보어 위치에 쓰일 수 있는 명사의 유형은 동사에 의해 제약된다(선택 제약).
ㄷ. 주어 이외의 필수적 문장 구성 성분으로서 보어의 실현 여부 또는 보어의 수 등은 동사에 의해 결정된다(동사 술어가 하나의 논항만을 요구하는 일항 술어인가 또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이항/삼항 술어인가에 따르는 것이다).
ㄹ. 보어의 통사적 실현 양상의 표지(한국어의 격조사, 영어, 프랑스어 등의 전치사)는 동사에 의해 결정된다.

다음 (2)ㄱ-ㄴ 사이의 대조는 (1)ㄱ의 진술을 확인시켜 준다.

(2) ㄱ.*윤아는 기영이에게. / ㄴ. 윤아는 기영이에게 (다가갔다+의지했다+빠졌다).

(3)ㄱ-ㄴ과 (4)ㄱ-ㄴ은 각각 (1)ㄴ과 ㄷ의 진술을 확인시켜 준다.

(3)ㄱ.(바람+*바위)-가 분다. / ㄴ.정환이는 (구두+운동화+*바지+ *안경)-을 신었다.
(4)ㄱ. 기영이는 (*사정을+E) 많이 변했다.
ㄴ. 윤아는 (*기영이에게+E) 편지를 읽었다.
[E는 주어진 통사 위치에 어떤 요소도 실현되지 않음을 표시한다.]

(3)ㄱ-ㄴ은 술어로서의 동사가 어떠한 성격의 대상을 논항으로 선택하는가를 보여 주며, (4)ㄱ-ㄴ은 역시 술어로서의 동사가 지배하는 논항의 수에 따라 문장 구조의 적격성이 결정되는 양상을 보여준다(변하다는 1항 술어, 읽다는 2항 술어). 또한 (5)ㄱ-ㄷ이나 (6)의 사례들은 동일한 2항 또는 3항 술어이지만, 동사 어휘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논항의 통사적 실현 양상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5) ㄱ. 윤아는 태우-(*에게+와+*를) 싸웠다.
ㄴ. 윤아는 기영이-(*에게+와+를) 만났다.
ㄷ. 윤아는 기영이-(에게+*와+를) 의지했다.
(6) 윤아는 기영이에게서 그 책을 (빌렸다+*주었다).

문장을 구성하는 데 있어 동사가 수행하는 이와 같은 역할로 보아, 동사는 문장 구성의 중심 또는 핵심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동사의 이러한 통사적 기능은 여러 언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통사 기능면의 동사를 의미적 차원의 술어와 구별하여, 주어, 보어에 대해 서술어라 지칭할 수 있다.
    한국어 문장에서 서술어 위치에는 형용사가 올 수도 있다. 다음의 예문들은 형용사가 동사와 평행적으로 서술어로서 문장 구성의 중심이 되는 점을 보여 준다.

(7) ㄱ. 이 방은 (*마루와+*문에+E) 넓다.
ㄴ. 기영이는 윤아-(에게+*와) 아주 충실하다.
ㄷ. 윤아는 기영이-(*에게+와) 비슷하다.

또한 서술어의 역할은 명사, 명사구 또는 그 이외의 여러 유형의 언어 표현이나 언어 요소에 -가 뒤따르는 연쇄에 의해 수행될 수도 있다.

(8) ㄱ. 윤아는 기영이-(*에게+와) 오래 전부터 친구다.
ㄴ. 나는 (이 계획+그를 대표로 뽑는 데)-(에+*와) 반대다.
ㄷ. 윤아는 (한국어 연구+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아주 열심이다.

이상의 관찰로 보면, 한국어 동사를 의미적 술어의 성격을 갖고, 통사적 차원에서 서술어로 기능하는 부류의 단어라고 정의하고 한정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지 못하다. 술어/서술어 기능은 한국어에서 동사만의 특성이 아니라, 동사가 형용사 부류나 -이다 연쇄와 공유하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1.3. 형태론적 기준
    한국어 품사 체계 내에서, 동사만을 특징지을 수 있는, 여타 품사와 구별하여 엄격히 동사만을 정의하고 한정할 수 있는 언어적 속성은 한국어 동사가 보여 주는 굴절 형태론적 특성이다. 다시 말해 동사의 활용 양상이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한국어 단어가 동사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판별하게 해 준다. 주어/보어와 같은 통사적 논항의 기능을 하는 명사구의 핵이 되는 한국어 명사는 굴절 형태론적으로 불변화어이다. 한국어 명사는 라틴어나 독일어 명사와 대척적으로 곡용(declension)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서술어 기능을 하는 한국어 단어 동사/형용사는 다음과 같이 비교적 복잡한 형태적 변이를 보인다.

(9) ㄱ. 읽-(는다+니+어라+자+는구나+자꾸나+으마+으렴+......)
ㄴ. 읽-(는+은+을+던) 책
ㄷ. 읽었-(음을+기에)
ㄹ. 읽-(어+게+지+고)
ㅁ. 읽-(고+지만+는데+어서+으니까+으려고+느라고+으면+......)

따라서, 동일하게 술어성을 지니고 문장 구성의 핵으로 서술어 기능을 수행하는 한국어 동사의 정의적 속성을 한정하는 문제는, 굴절 형태론적 특징에서 형용사 부류와의 차별성의 문제로 요약된다.
    한국어 동사/형용사 구분의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 형용사의 유형론적 변이를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세계의 언어는 (i)형용사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 (ii)형용사가 명사와도 동사와도 다른 언어, (iii)형용사가 명사와 많은 속성을 공유해서 명사와 유사한 언어, (iv)형용사가 동사와 많은 속성을 공유해서 동사와 유사한 언어 등등의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데, 많은 언어는 (iii)의 유형이나 (iv)의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iii) 유형의 언어는 명사성 형용사 언어로, (iv) 유형의 언어는 동사성 형용사 언어로 특징지을 때, 라틴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또는 몽골어, 터키어는 명사성 형용사 언어이고, 한국어는 중국어나 월남어 등과 같이 동사성 형용사 언어에 속하게 된다. 한국어 형용사는 동사를 특징짓는 대부분의 활용어미―선어말/어말 어미―가 직접 부착되어 동사와 동일하게 서술어 기능을 한다.
    또 한편으로, 동일한 동사성 형용사 언어 유형이라도, 동사/형용사 구분의 근거가 되는 언어적 속성은 언어에 따라 다른데, 한국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활용상의 차이에 입각하여 동사/형용사가 구분된다.

(10) 해라체의 현재형 평서문 문말 어미는 동사는 -(느)ㄴ다인 반면, 형용사는 -이다.
ㄱ. 나는 책을 읽는다./그는 도서관에 간다.
ㄴ. 물이 깊다./윤아는 부지런하.

따라서 대용언 현재형도 각각 그런다/그렇다가 되고, 부정 보조동사도 현재형이 - 않는다/않다가 된다. 또한 독립된 서술어로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복합동사(연구하다)/복합형용사(조용하다) 구성에도 똑같이 참여하는, 대단히 중요하고 특징적인 용언인 하다는 동사/형용사의 범주적 차이에 따라 상이한 활용 양상을 보인다(연구하기는 한다/조용하기는 하다).

(11) 역시 해라체의 의문문 문말 어미는 동사가 -느냐인데 반해, 형용사는 -(으)냐이다.
(12) 동사는 명령문 청유문 형태의 활용이 대체로 가능한데―앞서 인용한 상태/속성 표현의 동사인 어긋나다, 해당하다, 모자라다 등은 불가능하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표현), 형용사의 경우는 체계적으로 -어라/- 등의 활용이 차단되어 있다.
(13) 명사구 구성 성분으로 수식 기능을 할 때에는 현재/과거 표현의 관형형 어미가 동사는 각각 -/-(으)ㄴ이 되고 형용사는 -(으)ㄴ/-(었)던이 된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한국어의 동사는 형용사/일부 술어명사와 마찬가지로 의미상 술어의 속성을 지니며, 역시 형용사와 마찬가지로 통사적으로 문장의 핵인 서술어 기능을 하지만, 명사나 부사 등 불변화어 부류와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또한 형용사 부류와는 제한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적 굴절 형태론적 변이를 보이는 단어 부류로 정의될 수 있다(그 특징적 형태 변이는 3절에서 조금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2. 한국어 동사의 품사 유형론적 지위와 특성
    위와 같이 정의되고 한정될 수 있는 한국어 동사 부류가 한국어 품사 체계 내에서 어떠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범언어적 변이 속에서 한국어 품사 체계가 지닌 특성과 관련하여, 간략히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하여 지적해 보자.

(14) 한국어는 명사/동사/형용사/부사가 여러 언어 속성으로써 구별되는 ―특히 동사가 명사/형용사와 구별되는― 개방적 대어휘부류의 지위를 갖는다.
(15) 한국어는 형용사가 동사와 형태론적/통사적/의미적 속성이 극히 유사한 동사적 형용사 언어이다.
(16) 한국어에는 관사, 접속사, 관계대명사가 존재하지 않고, 대단히 풍부한 상징어(ideophone, 전통적 지칭으로는 의성어·의태어), 분류사(classifier)가 존재한다.

(14)의 특성은 우리에게 친숙한 많은 언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어서, 자명하거나 보편적인 속성으로 오해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명사/동사의 구분이 불분명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동사가 10개에서 100개 정도로 제한된 범주를 이루는 언어, 또는 형용사가 부재하거나, 극히 소수의 어휘 요소만 포함하는 소범주를 이루는 언어, 또는 부사 부류를 설정하기 어려운 언어들이 있는 등, (14)의 특성은 언어 보편적인 품사 체계의 속성이 아닌 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듯하다. 한국어 동사 부류는 관형사나 조사와 같은 폐쇄적 부류와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중에 새로운 동사 어휘들이 생성되거나 또는 쓰이던 동사 어휘들이 소멸될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 아니라 그 어휘 목록이 대규모이고(표준어를 사용하는 평균 성인 화자가 알 수 있는 동사 어휘 목록을 작성한다면 최소한 25,000항목 정도는 포함할 것이다), 엄격히 한정하기도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한국어 동사는 개방적 대어휘범주를 이루는 것이다.
    (15)의 특징은 앞의 1.3.에서 이미 논의가 되었다. (16)의 특성 중, 특히 관사, 접속사, 관계대명사의 부재는 유럽 지역에서 사용되는 주요 인구어와 대조되는 알타이 제어의 공통된 특성으로 일찍부터 관찰되어 왔다. 한국어에서 문장의 접속 기능은 동사/형용사와 같은 서술어의 어말어미 중 이른바 연결 어미가 담당하며―이 점은 3절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명사구 접속에는 접속사 부재의 언어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공동격 조사인 -/-가 사용된다.
    이 밖에 품사 유형론의 관점에서 관찰된 동사의 특성에 비추어 한국어 동사가 지닌 속성을 몇 가지 더 정리해 보기로 하자. 범언어적으로 동사는 아래와 같은 특성들을 지닌 것으로 정리된다.

(17) 개방적 대어휘부류로서 동사와 명사는 다음의 두 가지 비대칭적 성격을 보인다.
ㄱ.명사는 전형적으로 사람/장소 또는 사물을 지시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체로 명사적 의미의 범위는 이들 의미 유형에 한정되지 않고, 행위나 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술어적 의미 부류를 표상할 수 있으나, 동사는 행위/과정/상태 등의 전형적인 술어 의미 부류의 표상에 한정된다.
ㄴ.형태론적 변이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에 따라 명사는 동사와 동시에 또는 단독으로(중국어나 월남어의 경우) 불변화어일 수 있으나, 동사만 단독으로 불변화어인 언어의 경우는 현재까지 관찰된 바가 없고, 어떤 언어에서든지 동사는 항상 명사에 비해 형태론적 복잡성(활용의 복잡성)의 정도가 높다.
(18) 동사는 전형적으로 서술어로서 기능을 하지만, 명사와 같이 논항으로 쓰일 수도 있고, 명사나 다른 동사/형용사를 수식하는 기능도 발휘할 수 있다.(떠나기가 싫다, 떠나는 사람들, 신나게 놀았다, 미치도록 그립다, 사서 고생을 한다) 이와 같이 기능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 형태론적 속성에 현저한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3. 한국어 동사의 형태론적 구조
    한국어 동사는 서술어 기능을 하면서 문장 속에 실현될 때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상의 변이를 보인다. 동사가 보이는 형태상 변이는 어간(stem)을 이루는 부분의 구성과 어간에 뒤따르는 이른바 어미(ending) 부분의 구성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어휘 형태론(전통적으로는 파생 형태론)의 관점에서, 둘째 부분은 굴절 형태론의 관점에서 특징지을 수 있다. 예컨대 '읽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읽다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실현될 수 있다.

(19) 읽히시었겠더라

(19)의 형태는 어간 부분(읽히)과 어미 부분(시었겠더라)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어간은 어근()과 사동 파생 접사()로, 어미 부분은 선어말 어미(시었겠더)와 어말 어미() 등으로 분할될 수 있다. 대체로 특정한 어휘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다른 요소와의 결합이 없이는 자율적으로 문장 속에 쓰일 수 없는 요소(국제, 조용, 열심 등)를 어근(radical)으로 한정할 때, -, -, -과 같은 단일 형태소의 동사 어간은 모두 어근의 성격을 지닌다. 한국어의 사동형 동사 어간 구성에 참여하는 요소 -는 일부 동사성/형용사성 어근(또는 어간)에만 첨가될 수 있는 점에서 파생 접미사로 분석된다. (19)의 연쇄에서 바로 뒤에 나타난 이른바 존칭 어미 는 동사 어간과의 결합에서 이러한 특이한 제약이 없는 점에서 파생 접사가 아닌 굴절 접사(inflectional affix)의 지위를 갖는다. 동사/형용사의 형태 변이를 이루는 굴절 접사를 보통 어미라 지칭한다. 굴절 접사가 부착되는 동사 형태의 부분이 어간(stem)이 된다. (19)의 형태는 어근과 파생접사(-)로 구성된 복합 어간을 내포한 예가 된다. 또 한편, 선어말 어미 부분은 각각 존칭/시제/서법을 나타내는 독립된 문법 형태소의 연쇄로 분할되고(---), 어말 어미 -라는 단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한국어 동사 어형(word-form)의 구조는 (20)-(21)이 진술하는 범언어적인 형태론적 일반성과 잘 부합됨을 언급해 두자.

(20) 단어 구성의 핵심 요소에 파생 접사와 굴절 접사가 모두 결합될 때에는, 일반적으로 파생 접사가 굴절 접사보다 더 가까이/먼저 핵심 요소와 결합한다.
(21) 굴절 접사는 일반적으로 핵심 요소인 어간에 후행한다.

(20)은 동사/형용사의 활용형이나 명사의 곡용형이 파생 관계에서 어기(語基)의 기능을 하는 사례가 별로 없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1)은 접미사 선호(suffixing preference)로 지칭되는 일반성을 표현한 것인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도유럽어들을 포함해 많은 언어에서 상/시제/서법 또는 인칭/수의 활용 어미는 어간에 후치된다. 이들 요소가 어간에 전치되는 언어들도 분석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 경향은 접미 활용이며 한국어도 예외가 아니다.
    3.1. 어휘 형태론적 특성
    한국어 동사 부류는 개방적 대어휘범주의 품사적 지위를 갖고 있어, 그 어휘 목록의 규모는 상당한 정도에 이르지만, 그 개방성과 또 다른 여러 이유로 그 목록을 결정적으로 한정해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의 정도를 짐작하기 위해 현재 간행되어 있는 사전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략 50만 표제어를 담고 있는 국립국어연구원 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68,000개 정도의 동사 항목이 수록되어 있고, 한글학회 편 『우리말 큰사전』의 경우는 40만 표제어 중 55,700개 정도의 동사가 포함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하다/되다/거리다/대다/이다를 내포한 복합 동사가 부표제어로 처리되고 있다(주표제어 동사: 약 15,000/부표제어 동사: 약 53,000). 또 이 사전의 동사 항목은 북한어나 지방어, 옛말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제외하면 일반어 동사는 주표제어 약 7,500개, 부표제어 약 41,500개, 총 48,500개 정도로 산정된다. 문화관광부/국립국어연구원이 주관하는 한국어 정보화 계획인 세종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세종 전자 사전 구축 작업을 위해서는 현재 코퍼스(말뭉치)에 기반한 언어 자원으로부터 추출한 25,000개 정도의 동사 목록을 활용하고 있다. 이 목록을 개략적으로 형태상의 차이만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모두 고유어인 단일 어간의 동사는 460개 정도이며, 여기에 걷다를 길을 걷다/팔을 걷다의 두 동사로 분할하거나 말다 종이를 말다/국수를 말다/하다 말다/하지 말다 등 네 동사로 구분하는 등 동형어 분할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600개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이다. 25,000개, 48,000개, 또는 그 이상의 규모로 동사 어휘부가 확장이 되고, 사전마다 그 규모에 변이가 생기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이 600개 정도를 제외한 한국어 동사가 모두 둘 이상의 구성 요소를 갖는 복합 어간으로 이루어지며, 그 복합 어간의 목록을 절대적으로 한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단일 어간의 제한성 이외에, 한국어 동사 어휘부를 구성하는 특징의 또 한 면인 복합 어간의 구성 양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어 동사의 복합 어간의 구성은 상당히 다양한데, 가장 중요한 유형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22) ㄱ. 접두사/부사/명사/상징어 등의 선행 요소+동사 어근
ㄴ. 동사 어근의 연쇄
ㄷ. 어근 + 피동 접사/사동 접사

(22)ㄱ-ㄴ은 범언어적 변이의 관점에서 볼 때, 복합 동사를 구성하는 매우 일반적인 기제이다. 동사 어휘 자체가 제한적이거나, 핵심적인 기본 동사 어휘의 수가 한국어처럼 적은 언어의 경우, 그렇지 않은 언어의 동사가 표상하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술어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22)ㄱ에 제시된 바와 같은 유형의 요소를 동사에 선행시키거나―이들 요소는 preverb 또는 coverb로 지칭된다―, (22)ㄴ과 같이 동사를 연쇄시키는―이러한 구성이 verb serialization이다― 방식을 활용하며, 이러한 복합적 표현은 한국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 하나의 단어/동사로 기능을 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한국어의 경우 (22)ㄱ-ㄴ 두 기제의 작용이 동사 어휘부의 규모를 증대시키는 핵심적인 두 변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어에서는 특히 외래적 요소―주로 한자어 요소나 근래에는 영어 요소―를 차용하여 하다/되다/시키다 등의 동사와 결합시키거나(비판하다, 데모하다, 용해되다, 대피시키다), 한국어에도 특징적으로 존재하는 풍부한 상징어 요소(반짝, 우글우글, 징징, 우물쭈물)와 하다/거리다/대다/이다를 결합시키는 방법이 대단히 생산적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는 복합 동사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일반어 복합 동사 48,500여 개 중 41,000개에 이른다. 또한 동사 연쇄로 이루어지는 복합 동사 역시 대단히 풍부하다(건너-가다, -내려-가다, 떨어-지다). 일부 접두사 파생동사(치솟다, 휘젓다, 짓밟다)나 오가다와 같은 순수한 어근 연쇄 동사 등을 제외하면 한국어 복합 동사는 대부분이 이 두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두 유형의 복합 표현 중에서 하나의 단어로 어휘화되어 한 동사로 기능을 하는 경우를 엄격히 언어학적으로 한정하는 데에는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동사 목록의 작성이 어렵고, 사전마다 또는 연구자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22)ㄷ에 개입되는 파생 기제는 (22)ㄱ-ㄴ의 경우와 아주 다르다. 피·사동 접사 파생은 한국어 동사 어휘부 증대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피·사동 접사를 내포하는 한국어 복합 동사는 기껏해야 600개 미만이다. 이 유형의 접사와 결합될 수 있는 동사 어근이 이와 같이 제한적이고, 그 결합 가능성이 불규칙적이어서 분명 파생 접사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접사적 요소가 사동(사역) 구문의 구성/피동 구문의 구성이라는 범언어적으로 상당히 일반적인, 문장의 술어-논항 구조에 변경을 가져오는 작용을 하는 면에서 중요하고 특징적이다. 사동 구문에는 사태를 내재적으로 특징짓는 논항 이외의 외부적 논항이 하나 첨가되고(논항 수의 증가), 피동 구문에서는 능동 구문에서 나타났던 주어 논항의 통사적 지위가 바뀌고, 아울러 논항이 실현되지 않는 일이 빈번해지는(논항 수의 감소) 등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한국어 사동 파생 접사는 -, -, -, -, -, -, -의 변이형이 있으며, 넓다, 붉다, 괴롭다, 어지럽다 등 20개 미만의 형용사 어간에 결합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를 제외하면 그대로 피동 파생접사로도 사용되는 점이다. 따라서 몇 개 동사형태는 이중적으로 분석되거나, 분석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예컨대 안기다안다의 피동형(애가 안기다)과 사동형(애를 누구에게 안기다)으로 분석되고, 걸리다걷다의 사동형/걸다의 피동형으로 분석되며, 울리다는 (애가) 울다의 사동형이면서, 종이 울리다/종을 울리다 구문에서는 그 지위를 가려내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동/피동 표지의 동형성은 한국어 이외에도 몽골어, 만주어 같은 일부 알타이 제어나 몇몇 서부 아프리카어, 미국 인디안어에서도 관찰된다.
    한국어 피동 구문에서 동사는 피동 파생 접사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동 접사는 사동 접사처럼 -, -, -, -의 네 가지 변이형이 있는데, 그 분포 위치는 역시 사동 접사와 마찬가지로 어간의 마지막 위치이다. 선행하는 요소는 사동형의 경우처럼 여러 복합 유형일 수 있다(복합 어근의 피동형: 바라다--이다, 뒤얽-히다, 쥐어뜯-기다/복합 어근의 사동형: 장가들-이다, 뒤집어씌-우다).
    피동형은 접사로 피동을 표지화하는 종합적 피동과 조동사를 사용하는 분석적 피동으로 나누어 보기도 하는데, 유럽 지역의 인도유럽어와 중국어, 월남어, 타이어 등 동남 아시아 지역 언어를 비롯한 일부 언어에만 분석적 피동형이 분포되고, 세계의 대부분 언어는 한국어와 같은 종합적 피동형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굴절 접사가 피동의 표지가 되는 언어도 있으나, 한국어와 같이 파생 접사로 어간을 변경시켜 피동형이 구성되기도 한다.
    3.2. 굴절 형태론적 특성
    범언어적 변이의 관점에서 보면, 접사/어미의 형태로 동사 어간에 결합되어 실현되는 문법적 의미/문법 범주는 대단히 다양해서 용이하게 한정할 수 없다. 동사의 굴절 접사로 부정문이 구성되거나, 자동사/타동사의 구분이 동사에 표지되는 경우도 있고, 동사의 인칭·수 일치가 주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보어에 대해서도 요구되는 사례, 재귀사(한국어의 자기, 자신)나 상호사(서로)가 한국어와 달리 동사의 굴절 접사의 지위를 갖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동사의 활용 양상은 매우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나 월남어는 동사 활용이 부재하는 극단적인 유형이다. 영어의 경우는 동사 활용 양상이 대단히 단순해서, 하나의 동사는 무표지이거나 3인칭 단수 현재형 표지 -s, 과거시제 표지 -ed, 과거분사 표지 -en, 진행형/동명사(gerund) 표지 -ing가 부착된 다섯 가지 형태만을 취한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어 동사의 활용 양상은 매우 복잡하고, 하나의 한국어 동사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활용 형태의 수는 기천 개에 이를 수 있다.
    한국어 동사 어간에 뒤따를 수 있는 가능한 굴절 어미를 한정하고, 그 의미를 특징지어 문법 범주에 따라 유형화하는 등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나 상이한 경쟁적 분석이 공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자리에서는 간략히 한국어 동사 굴절 어미의 유형과 특징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이는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여러 분석 중 하나가 된다). 앞서 (19)의 동사 형태를 사례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어 동사의 활용 부분은 선어말 어미와 어말 어미로 나뉜다. 선어말 어미(---)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문법 범주를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는 발화 상황의 참여자(화자/대화자)와 문장이 표현하는 상황/사태의 참여자 사이의 사회적 태도(존중/공손 또는 겸양 등)를 표현하는 문법 범주로서 존칭 범주의 어미이다. 는 보통 문장의 주어 논항이 지시하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존중·대우의 표시로 실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는 주체 경어법의 표지로 특징지어진다.
은 과거 시제의 표지(marker)이다. 한국어 시제 체계는 과거/비과거의 이원 체계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과거는 특정 요소로 표지화되고 이에 대립되는 현재/미래는 무표지이다(이렇게 본다면, 읽는다의 -이나 읽습니다의 -습니를 별개의 형태소로 분할하지 않고 -는다/-습니다를 각각 해라체와 하십시오체의 단언 평서문의 종결 어미로 분석하는 입장을 택하는 것이다).
와 함께 서법(mood) 표지로 볼 수 있다(형태소 단위의 자격을 갖는 굴절 어미의 한정이나 개별 어미에 대한 의미/기능의 분석은 별도의 자세한 논의와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 한국어 상(aspect) 범주는 보조 동사 -고 있다/-어 있다, 또는 -어 가다/-어 오다 등으로 실현된다. 이들 보조 동사는 시제/서법 범주의 실현에 선행하여 본동사 어간 직후에 연쇄된다(읽히- -으시---지만).

이렇게 가정을 하면, 한국어는 대부분의 언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사에 상/시제/서법의 세 문법 범주가 이 순서대로 실현되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아울러 존칭 범주가 상 범주의 직후에, 어미 중 첫 번째 위치에 실현되는 특이성이 있다고 하겠다.
    한국어 동사의 어말 어미는 앞의 (9)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듯이 대단히 다양하다. 어말 어미는 보통 문장을 종결시키는 표지의 기능을 하는 종결 어미(또는 문말 어미)와 동사를 서술어로 내포한 문장이 그것으로 완결되지 않고 또 다른 문장의 구성 성분으로 쓰임을 표시하는 비종결 어미(또는 비문말 어미)로 구분할 수 있다. (9)ㄱ은 일부 종결 어미의 사례를 보여 주는데, 한국어 종결 어미의 기능은 세 가지이다. (i)종결 어미의 분포 자체로 문장이 완결됨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 형태상의 변이는 (ii)대화자에 대한 공손함/발화 상황의 격식성/친밀성의 등급을 구별해서 표시하고, 동시에 (iii)발화의 양태, 또는 문의 양태(modality), 다시 말해 화자가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수행하는 기본적인 발화 행위의 유형을 구분해서 표시한다.
    (ii)의 기능의 관점에서 흔히 한국어 문장은 6가지의 문체/화계(speech level)의 구분을 갖는다. 최상위 등급의 하십시오체―격식을 갖춘 발화 상황에서 대화자에게 최대의 공손함을 표시하는 화계로 읽습니다/읽습니까 등의 형태가 선택된다―에서부터, 해요체, 하오체, 하게체, 해체, 해라체에 이르기까지의 구분이 그것이다.
    (iii)의 기능에 따라, 한국어 문장은 사태의 존재나 사실성에 대한 화자의 단언 행위를 나타내는 평서문, 질문 행위의 의문문, 요청 행위의 명령문, 화자가 동시에 연루되는 제안 행위의 청유문이 기본 유형으로 구분된다(이 네 가지 유형의 문장은 6가지 화계에서 모두 실현된다). 이 밖에, 사태에 대한 화자의 놀라움이나 강조와 같은 정서적 반응을 직접 표현하는 발화 행위나 약속이나 허락의 발화 행위를 특정한 문말 어미가 표현할 수 있는데, 이 같은 문말 어미는 화계에 따라 분포가 제약되어 감탄 어미는 해라체(-구나)/해체(-) 또는 해요체(-군요)에만 나타나고, 약속 표현의 -와 허락 표현의 -, -려무나는 해라체에만 쓰인다.
    한국어 종결 어미가 수행하는 (i)-(iii)의 기능은 범언어적 변이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특징적인 점이라 볼 수 있다. 평서문과 의문문의 구분이 동사의 굴절 어미로 표시되고, 그것도 화계의 구분에 따라 실현 형태의 변이를 보이는 언어는 극히 일부 언어에 제한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비종결 어미는 넓은 의미로, 주어진 동사를 서술어로 하는 문장과 다른 문장과의 관계(interclausal relation)를 표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다시 전성 어미 접속 어미로 구분된다. 전성 어미는 서술어인 동사 또는 그것을 내포한 문장의 기능 전환의 표지로서, '명사화 어미: (9)ㄷ'과 '관형화 어미: (9)ㄴ' 두 가지가 구별된다. (9)ㄹ의 어미를 부사화 전성 어미로 특징짓기도 하는데, 접속 어미로 (9)ㅁ의 요소들과 한데 묶을 수도 있다.
    한국어 동사 활용의 극히 특징적인 국면은 그 수가 적어도 백 개 이상에 달하고 원인/이유, 목적, 가정 등 다양한 의미를 표현하는 접속 어미에 있다. 한국어는 특별히 문장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부류의 품사인 접속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장을 접속하는 기능은 동사의―일반적으로는 서술어의― 활용 어미가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구실을 하는 한국어 동사/형용사의 굴절 어미를 접속 어미 또는 연결 어미라 부르는 것이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알타이 제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의 동사가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데, 동사의 이와 같은 활용형을 일반적으로 부동사(converb)로 지칭한다. 그 중 일부―한국어에서는 '-, -, -, -'―는 여러 유형의 동사 연쇄를 구성할 때 선행 동사에 부착되는데(먹어 보다, 죽게 하다, 가지 않다, 읽고 있다), 이런 하위 부류를 동사 접속 어미로 나머지 '문 접속 어미: (9)ㅁ'과 구분할 수도 있다. 문 접속 어미는 다시 인도유럽어의 등위 접속/종속 접속 구분 모형에 따라 등위 접속 어미(-, -지만 등)와 종속 접속 어미(-어서, -니까, -려고 등)로 양분되기도 한다.
    한국어 동사의 형태론적 구조에 실현되는 굴절 범주의 특징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3) ㄱ.동사 굴절 범주의 일반적이고 핵심적인 세 범주 중 시제/서법은 어미로 실현되지만 상은 조동사로 실현된다.
ㄴ.문장의 의미/통사 구조의 주요한 국면과 관련된 사역/태(능·피동) 범주는 굴절 어미가 아니라 파생 접사로 실현된다. 이들 범주와 관계가 긴밀한 재귀/상호 상황은 예외적으로 자기/서로와 같은 독립된 지위의 단어로 실현된다(한국어와 같이 사역/태의 표지가 접사이고 주어+보어+서술어의 어순을 갖는 언어는 대체로 재귀/상호 표지 역시 접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어는 예외적 사례이다).
ㄷ.문장 사이의 접속 관계 또는 문장의 상위 구조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과 지위는 굴절 어미(비종결어미)로써 실현된다.
ㄹ.인도유럽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논항(주어/보어)의 성격(인칭/수/성 등)이 동사 어미로 반영되는) 일치 현상은 한국어 동사 활용 범주에는 나타나지 않는다(존칭 표지 -시-의 실현이 이와 비슷한 성격의 굴절 범주로 분석될 수 있을 뿐이다).
ㅁ.한국어 동사는 화계와 문의 양태(기본적 발화 행위의 유형)가 굴절 어미로써 규칙적으로 실현되는데, 이 측면은 극히 일부 언어에서만 관찰되는 특이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