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꿈>
--- '?靈의해적임'의 의미 ---


권영민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소월은 200여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미덕은 토착적인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언어를 그대로 시 속에 끌어들인다. 심지어는 관서지방의 방언까지도 그의 시에서 훌륭한 시어로 활용되고 있다. 일상의 언어를 전통적인 율조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김소월의 시는, 바로 그러한 언어의 특성에 기초하여 민족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험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일상의 언어는 정감의 깊이를 드러내어 보여줄 수 있으며, 짙은 호소력도 지닌다.
    김소월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언어의 토착성이라는 것은 그 언어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민중의 정서가 언어와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소월의 시에는 추상적인 개념어가 거의 없으며, 정황이나 동태를 드러내는 토착어로서의 구체어가 많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그의 시의 율조는 민중의 호흡과 같이하면서 유장한 가락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가벼운 음악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김소월이 남긴 시 작품 가운데 그 시적 형식이 가장 간결한 작품은 <<꿈>>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모두 2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의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靈의해적임. 서름의故鄕.
울쟈, 내사랑, 지고 저므는봄.
        -- (진달내, 1925, 90면)

이 작품의 원문을 현대 표기법으로 고쳐 적어보면 <꿈? 靈의 해적임. 설움의 故鄕./울자, 내 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으로 표기할 수 있다. 첫 행의 시적 진술은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꿈을 영(靈), 영혼의 해적임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서러움의 고향을 떠올린다. 둘째 행에서 이같은 정서의 진폭이 크게 그려진다. 시인의 내면적 정서를 향한 시적 진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울자 내 사랑>이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정서의 폭은 계절의 변화를 끌어들여 그 정황의 구체성을 드러낸다. 꽃이 지고 저물어 가는 봄이라는 짤막한 진술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적 정서는 내면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을 동반한다.
    이 작품의 시구들을 좀더 면밀하게 분석해 보기로 하자. <꿈?>이라는 시구는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의문형의 진술이다. 이것은 누군가 상대방에게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향한 질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시인은 곧바로 <靈의 해적임>이리고 답한다. 꿈은 '靈의 해적임'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靈은 영혼이라고 다시 고쳐 놓을 수 있다. 그런데 '靈의 해적임'에서 '해적임'이라는 말이 어떤 단어인지 알아야만 의미가 분명해진다. 김용직 교수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해적임을 <풀따기>의 '해적해적과 대비하여 해작하다. 자꾸 들추어내다로 해석한 예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부분인 서름의 고향과 대가 되는 부분으로 당연히 명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해적임-해적을 연보, 비망록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 김용직 편, 김소월전집(서울대출판부, 1996), 84면.

김용직 교수는 문제의 '해적임'이라는 말이 싯구의 짜임으로 보아 명사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뜻을 '비망록'이라는 말로 풀이하면서, 오하근 교수가 그의 <김소월 시어법 연구, 집문당, 1995, 387면>에서 <해적이다: 헤적이다. 해작이다의 큰말. 자꾸 들추어 헤치는 모양>이라고 풀이한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제시하고 있다.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김소월은 꿈이라는 것을 '영혼의 연보 또는 비망록' 정도의 의미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김소월의 시에서 '해적임'이라는 말이 명사로 쓰인 예는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해적임'이 '비망록이나 연보'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달리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말을 '해적이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오하근 교수의 견해를 따른다면 이 구절의 해석이 달라진다. '해적이다'라는 말은 김소월의 여러 작품 가운데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1) 그립은우리님은 어듸게신고.
날마다 퓌여나는 우리님생각.
날마다 뒷山에 홀로안자서
날마다 풀을서 물에던져요.

흘러가는시내의 물에흘너서
내여던진풀닙픈 엿게갈제
물쌀이 해적해적 품을헤쳐요.
        --- 풀기(진달내, 5면)

(2) 燈불빗헤 거리는해적여라, 稀微한하느便에
고히밝은그림자 아득이고
퍽도갓가힌, 플밧테서 이슬이번여라.
        --- 합장(合掌)(진달내, 151면)

(3) 당신은 무슨일로
그리합니?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안자서

파릇한풀포기가
도다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에

가도 아주가지는
안노라시든
그러한約束이 잇섯겟지요
        --- 개여울(진달내, 178면)

앞의 여러 작품에 쓰이고 있는 예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물쌀이 해적해적 품을헤쳐요 :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치다
(2) 燈불빗헤 거리는해적여라 : 등불 빛에 거리가 해적이다
(3)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에 : 봄바람에 잔물이 해적이다

이들 싯구에서 '해적이다'라는 말은 어떤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일반적인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해적이다'라는 말 대신에 이와 유사한 '해작이다'라는 말이 등재되어 있으며, 그 의미를 '조금씩 들추거나 버릊어(파서) 헤치다'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해적이다'와 '해작이다'의 관계는 표기상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이 사전의 풀이를 참고한다면 앞의 (1)-(3)의 예에서 사용하고 있는 '해적이다'라는 말은 '작고 가볍게 움직이다' 또는 '가볍게 물결이 일어나게 하다' 정도로 볼 수 있으며, 각각의 구절도 그 의미를 아래와 같이 풀이할 수 있다.

(1) 물쌀이 해적해적 품을헤쳐요 : 물살이 조금씩 가볍게 일어나다
(2) 燈불빗헤 거리는해적여라 : 등불 빛에 어리어 거리가 가볍게 움직이는 듯하다
(3)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에 : 봄바람에 잔물이 가볍게 물결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례를 보면서 다시 시 <꿈>으로 돌아가 보자. <靈의 해적임>이라는 말은 이들 여러 사례와 견주어 볼 때, '해적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사용된 '해적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꿈은 영혼의 작고 가벼운 움직임이며, 작은 물결임을 이 시구는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전체적인 의미의 맥락으로 보아 부자연스러움을 면할 수 있다.
    이제 이 시의 다른 구절을 생각해 보자. 꿈이라는 것을 영혼의 물결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인은 곧바로 그 꿈결에서 그려보았던 고향 생각을 <설움의 故鄕>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 싯구의 정서적 가치와 등가를 이루는 것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둘째 행의 <울쟈, 내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과 서러움의 감정은 모두 사랑의 문제와 이어진다. 그리고 곧바로 울음으로 북받쳐나온다. 이러한 내면의 정서를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시인이 동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인 <지고 저므는봄>이다. 꽃이 지고 봄이 저물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계절적 정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잃은 채 열정이 시들어가고 있는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과 그대로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