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성립과 정착

宋 敏 /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생 한자어 중에는 한동안 일본에서 창안되었다고 여겨졌던 어형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중국의 초기 양학서(17세기)에서 발견되는 일도 있다. 이로써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던 신생어의 발원지가 중국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데, '병원(病院)'이란 신생 한자어도 그 중 하나에 속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송민(1998, 2000, 2002)에서 단편적인 논의를 거듭한 바 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았기에 다시 한번 그 성립과 정착 과정을 정리하기로 한다.
    개화 초기인 1881년, 신사유람단의 한 사람으로 일본을 돌아본 이헌영(李金憲永)은 오사카(大阪)에서 의료 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요병원(療病院)에 가니 의장(醫長, 의사) 열 사람이 있었다. 학도(學徒) 삼사 백 명을 가르치는데, 병자 또한 수백 명이나 되었다"(又往療病院 而有醫長十人 敎授學徒三四百人 病者亦爲幾百人)(『日槎集略』 <일기> 4월 18일).

이 때의 '요병원(療病院)'이란 당시의 일본어에서 '병원'이라는 뜻으로 통용된 여러 가지 어형 가운데 하나였다. 이헌영의 기록에는 '병원'이라는 어형도 나타난다. 『일사집략』의 산록(散錄) 각 관아소관(各官衙所管) 문부성(文部省) 산하에는 동경대학 의학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다음 줄의 첫머리에 적혀있는 '병원'이 그것이다. 이 '병원'은 동경대학 의학부의 병원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에 속한다. 어찌되었건 이헌영은 일본에서 '요병원'과 '병원'이라는 두 가지 어형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의 일본어에는 '병원'이라는 어형이 쓰이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의원(醫院), 시약의원(施藥醫院), 제원(濟院), 보제원(普濟院), 양병원(養病院), 대병원(大病院), 피병원(避病院), 요병원(療病院)' 등 다양한 어형으로 나타난다(佐藤亨 1983:49-55). 실제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의료 기관은 1877년 해군성이 시나가와(品川)에 세운 전염병 환자 수용 시설인데, 그 명칭은 '피병원(避病院)'이었다(槌田滿文 1983:257, 樺島忠夫·飛田良文·米川明彦 1984:277).
    한편, 일본어 '병원'은 1870-80년대에 출판된 사전류에 영어 hospital의 대역어로도 나타난다.

Hospital, biôin(Satow 1876), biô-in(Satow 1879). <참고> biô-in은 '病院'임ᅳ필자.
Hospital, 病院, 貧院/Infirmary, 病院(尺振八 1884).
Hospital, 病院, 施濟院/Infirmary, 病院(棚橋一郞 1885).
Hospital, Byō-in/Infirmary, Byōin/Byō ビヤウ 病. byō-in, ᅳ院 a hospital, infirmary/Hibyō-in ヒビヨウイン 避病院. A hospital ......(Hepburn 1886).
Hospital, 病院, 貧院, 救育院/Infirmary, 病院(島田豊 1888).

이처럼 일본어 '병원'은 hospital의 첫 번째 번역어였으며, 특히 infirmary의 번역어로는 '병원'만 쓰였을 뿐이다. 다만, Hepburn(1886)만은 권말에 붙어 있는 영어 사전에서 hospital, infirmary를 다 같이 '병원'으로 풀고 있으나, 정작 일본어 사전에는 '병원'이 '병(病)'의 부표제어로만 나타나는 반면, '피병원'이라는 어형이 표제어로 나타나 앞뒤가 일치하지 않는다.
    한 조사(佐藤亨 1983:44)에 의하면, '병원'이라는 어형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일본 문헌은 난학자(蘭學者) 가츠라가와 호산(桂川甫粲. 본명은 森島中良, 1754-1808. <참고> 佐藤亨 1983에는 '森島'가 '中島'로 잘못 적혀 있으나, 荒川淸秀 1997:29, 126에는 '森島'로 바르게 나타난다ᅳ필자)의『홍모잡화』(紅毛雜話, 1787)라고 한다. 이 책에는 유럽의 사회 복지 시설을 소개한 부분이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에는 "가스토호이스(네델란드어 Gasthuisᅳ필자)라는 시설이 있다. 명인은 병원으로 번역한다"(同國中にガストホイスという府あり. 明人病院と譯す)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때의 '명인(明人)'은 명나라 사람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여기에 보이는 '병원'은 중국어에서 나온 번역어형임을 알 수 있다. 『홍모잡화』의 '명인'이란 중국의 양학서를 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실상, '병원'은 애유락(艾儒略, G. Aleni, 1582-1649)의『직방외기』(職方外記, 1623), 남회인(南懷仁, F. Verbiest, 1623-1688)의 『곤여도설』(坤輿圖說, 1674)에 '빈원(貧院), 유원(幼院)'과 함께 나타나며, 남회인의 『서방요기』(西方要紀, 연대미상)에도 '양병원(養病院)'과 함께 나타난다(佐藤亨 1983:43-46). 결국, '병원'의 당초 발원지는 중국의 초기 양학서였으며, 이들의 일본 유입과 더불어 '병원'이라는 신생어도 일본어에 전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佐藤亨 1983:42-59, 荒川淸秀 1997:29-30).
    이 '병원'이란 어형은 중국의 후기 양학서(19세기)에는 계승되지 못했다. 중국어에서는 오히려 '의원(醫院), 의관(醫館), 제병원(濟病院), 대병원(大病院), 보제원(普濟院), 양병원(養病院), 시의원(施醫院)'과 같은 다양한 어형이 쓰였을 뿐이다(佐藤亨 1983:47-49).
    국어의 경우, 이 '병원'을 처음 보여주는 문헌은 『한불뎐』(1880)이다. 여기에는 "병원 病院 Hopital, hospice pour les malades"처럼 나타난다. 이 때의 '병원'은 『직방외기』나 『곤여도설』과 같은 중국의 초기 양학서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들어온 서양의 천주교 신부 중에는 중국에서 한문 소양을 쌓은 사람도 있었으므로 『한불뎐』의 편찬 과정에서 초기 양학서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국립의료기관은 1885년에 세워진 광혜원(廣惠院)이었다. 1884년에 내한한 미국의 선교의사 알렌(安連, H. N. Allen, 1858-1932)이 갑신정변 때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을 치료해 준 인연으로 고종의 시의관(侍醫官)에 임명되자 병원 설립을 건의한 것이다. 그러나 2월 29일에 설립된 광혜원은 개원 12일 만인 3월 12일 통리교섭 통상사무 아문의 건의에 따라 그 명칭이 제중원(濟衆院)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병원'이라는 일반 명칭도 점차 국어에 확산되었을 것이다. 다만, '병원'은 『한불뎐』이나 『일사집략』의 '병원'과는 다른 통로를 따라 국어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1890년대부터는 '병원'이라는 어형이 국어에 자주 쓰이고 있는데,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이나 『독립신문』(1896. 4.- 1899. 12.)에는 그 용례가 수십 차례씩 나타나며, 『한영뎐』(1897)에는 표제어로도 올라 있다. 몇몇 용례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서유견문』 제17편 病院. "病院은病人治療기爲야 設立者로" (442면)/"佛蘭西京城巴里에病院이大小合야十餘所니一院에配寘醫士의數病院의大小隨야八人或十五人이오"(442면)/"諸病院이 各部內에 散在나(443면).
    "病院 병보집"(李鳳雲·境益太郞, 『單語連語 日話朝雋』, 1895:23a).
    『독립신문』. "텬안 딩산도 김덕긔가 물기울셔 이 륙일 불안당의게 돈 쳔량을 앗기고 칼에 샹야 모화관 병원에셔 나흘 약을 붓치고 갓다더라"(제1권 17호, 1896. 5. 14. 2면 잡보)/"그러나 쳥인이라도 셔양 사들 치 죠션 와셔 학교와 병원과 졔죠쇼와 각 화샹 일을 야"(제1권 20호, 1896. 5. 21. 1-2면 논셜)/"누가 그병든 사을 여다 렷지 셔울 몃관 병원이 잇거 엇지 모로지  참혹 일이더라"(제1권 23호, 1896. 5. 28. 2면 잡보).
    "병원 病院 A hospital; a room where the sick are cared for"(『한영뎐』).

여기에 나타나는 일반명사 '병원'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일본어를 차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서유견문』과 『단어연어 일화조준』의 '병원'이 일본어의 문자표기에서 나온 어형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독립신문』이나 『한영뎐』의 '병원' 또한 일본어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영뎐』에는 당시의 일본어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위의 예시문에 나타나는 '병원' 또한 『한불뎐』이나 『일사집략』에서 계승되었다기보다 일본어에서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국어의 '병원'은 당시의 중국어에 기반을 두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본대로 '병원'이라는 어형은 중국의 후기 양학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몇몇 초기 양학서에만 나타나는데, 『독립신문』이나 『한영뎐』이 그러한 초기 양학서를 참고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어에 정착된 일반명사 '병원'은 19세기 말엽 드디어 관청 문서에도 나타난다. 1899년 4월 26일에는 '병원 관뎨'가 칙령 제14호로 공포되었고(『독립신문』 제4권 제92호, 1899. 4. 27. 1면), 이어서 '병원 셰칙'이 마련되면서(『독립신문』 제4권 제106호, 1899. 5. 13. 1면) 광제원(廣濟院)이라는 국립병원이 설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병원'이 이미 국어에 정착했음을 알려준다.
    그후 20세기에 들어서면 국어의 '병원'은 일본어 '병원'의 대역어로 자리를 굳혔음이 드러난다. 정운복(鄭雲復)의 『독습일어정칙』(獨習日語正則, 1907)과 같은 대역 자료를 통하여 그 사실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病院. 病院ニハ 看護婦ガ 居リマス/病院에 看護婦가 잇니다(246하단), 病院デハ 凡ノ患者ヲ 收容シテ 治療サセマス/病院에셔 왼 病人을 收容야 治療식히옵니다(247하단).

결론적으로 개화기의 국어에 정착된 신생 한자어 '병원'은 일본어로 거슬러 올라가며, 일본어의 '병원'은 다시 17세기에 이루어진 중국의 초기 양학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후 일본어 '병원'은 영어 hospital이나 infirmary에 대한 번역어로 자리를 굳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초기 양학서에서 비롯된 '병원'이 정작 중국의 후기 양학서에는 계승되지 않았다. '병원'이라면 '병자의 거처'로 인식될 수도 있어 그 의미가 투명하지 않은 데다가 '의원(醫院)과 같은 전통적 중국어형이 전통적으로 쓰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국어나 일본어의 '병원'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현대 중국어는 '의원(醫院)'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대 중국어에 '병원'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의미는 주로 전문 병원을 나타낸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현대 국어의 일반명사 '병원'은 직접적으로는 개화기의 일본어로, 간접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7세기 중국의 초기 양학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편, '병원'과 유의어 관계에 있는 현대 국어의 일반명사 '의원(醫院)'은 전통적인 중국어에서 유래한 어형이 아니라면, 『한불뎐』이나 『한영뎐』에 올라있지 않은 점으로 판단할 때 개화기의 국어에서 자생한 어형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국어의 '의원'은 적어도 일본어와는 관련이 없는 어형이다.

참 고 문 헌

*전번 호까지 이미 제시한 문헌은 생략함.
宋 敏(2002), 開化期의 新生漢字語 硏究(2), 『語文學論叢』(국민대) 21.
樺島忠夫·飛田良文·米川明彦(1984), 『明治大正 新語俗語辭典』, 東京堂出版.
佐藤 亨(1979), 譯語「病院」の成立―その背景と定着過程―, 『國語學』 118.
새국어생활 제11권 제4호(2001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