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띄어쓰기

여규병 /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대우

한글맞춤법 제1장 총칙 제2항에서는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문 기사의 문장이라고 이 띄어쓰기 규정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100여 년의 한국 신문사(新聞史)에 있어 띄어쓰기는 거의 무시되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신문 제작 과정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납 활자로 제작하던 시기에 공정(工程)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빚어진 띄어쓰기 무시 관행이 컴퓨터를 통해 제작하게 된 최근까지도 이어져 온 면이 있다. 그런가 하면 공정상의 어려움과는 달리 제한된 지면에 좀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싣기 위하여 무리하게 '붙여 쓰기'를 한 경우도 없지 않다. 또 제목의 경우 본문과 달리 시각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띄어쓰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잘못된 관행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글에서는 띄어쓰기와 관련하여 '신문을 위한 변명'과 함께 신문의 띄어쓰기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신문에서 많이 틀리는 띄어쓰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분야에 관한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어 편의상 필자가 소속된 동아일보를 위주로 참고함을 밝혀 둔다. 필자가 알기로는 현재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사 문장은 창간 당시인 일제강점기부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해 왔다. 따라서 띄어쓰기의 문제도 그리 큰 격차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1. 신문을 위한 변명
    납 활자로 제작하던 시절에 교열 기자가 띄어쓰기를 하는 것은 여간 용기를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우선 취재 기자들이 촌각을 다투며 원고지에 휘갈겨 쓴 기사를 문선(文選) 부원이 역시 분초를 다투며 채자(採字)하고 교정쇄를 찍는다. 교열 기자 또한 촌각을 다투며 오자 탈자를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띄어쓰기는 자연스레 무시되기 마련이었다. 이 당시는 오자를 바로잡는 것보다 띄어쓰기를 하는 과정이 더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자를 바로잡는 일이야 활자 하나만 바꿔 끼우면 되지만 띄어쓰기를 하려면 문선 부원이나 조판자(組版者)가 공목(空目·자간이나 행간 따위를 메우기 위하여 끼우는 나무나 납 조각)을 활자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 이때 공목이 들어가는 양만큼 활자를 다음 줄로 넘겨야 하는데 띄어쓰기 하나를 위하여 연쇄적으로 몇 줄씩 건드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오자 바로잡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셈이다. 그러니 교열 과정에서 띄어쓰기를 몇 번만 하면 당장 "누가 이렇게 갈매기(띄어쓰기를 나타내는 교정 부호 '∨'를 빗대어 하는 말)를 많이 그리느냐?"며 아우성이 난다. 결국 기준은 애매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띄어쓰기를 꼭 해야 한다고 우기면 심지어 "지금 교과서 만드는 줄 아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속보(速報) 경쟁을 하는 신문의 생리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는 신문 제작 과정에 드디어 컴퓨터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컴퓨터 제작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취재 기자는 여전히 원고지에 기사를 쓰고 문선 부원이 채자하는 대신 오퍼레이터가 입력하고 교정쇄를 출력하여 교열을 보는 수준이었다. 띄어쓰기를 하는 데 활자 제작 시기와 같은 큰 장애 요인은 없었지만 오퍼레이터가 엉뚱한 곳을 띈다든지, 띄어쓰기를 한다는 것이 글자를 삭제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실수를 간혹 저지름으로써 교열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띄어쓰기를 하는 데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각 신문사에서 명실상부한 컴퓨터 제작 체제를 경쟁적으로 갖추게 됨으로써 교열 기자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직접 교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띄어쓰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신문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구습이 크게 바뀌지 않아 띄어쓰기를 경시하는 분위기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일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신문이 띄어쓰기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다만 속보 경쟁이라는 신문의 속성 때문에 빚어지는 띄어쓰기 잘못이 쉬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2. 신문의 띄어쓰기 변천 과정
    앞에서도 밝혔지만 납 활자로 제작하던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띄어쓰기가 무시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나름대로 띄어쓰기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연대별로 띄어쓰기가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 동아일보의 사례를 위주로 살펴보겠다.

平壤署活動
怪日人檢擧
피무든칼기타를압수취됴
京城强盜인嫌疑濃厚
지난달삼십일오전령시경 평양경찰서에서는 돌연이부내황금뎡(黃金町)팔천대관(八千代館)이라는 일본려관을습격하야 어 일본청년한명을 톄포하는동시에 그가가지고잇든 여자의복이잔득찬 큰가방두개와 뎐당표닐곱장 피무든단도두개 쇠줄는 집게등속을 압수한후방금 엄중히취됴중인바 아즉자세한 것은 알수업스나 그는자칭일본산구현(山口縣)출생의사옥명작(士屋明作)(三一)으로서지난달이십이일에평양에와서그동안몃곳에서 절도질을 한 것은자백하얏스나 여죄가 만흘듯할아니라 경성에서 강도질을한혐의가 농후하야 취됴를계속중이며 공범이잇슬듯하야 방금수색중이라더라【평양】
(동아일보, 1929년4월2일)

이 기사 중 밑줄 친 부분은 괄호를 제외하고도 무려 39자가 띄어쓰기가 전혀 없이 붙어 있다. 1920년대 말까지는 이런 식의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띄어쓰기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경우 1933년 4월 1일부터 그해 10월 29일(당시의 한글날)에 발표될 예정이던 '한글마춤법통일안'을 미리 적용하면서 띄어쓰기를 정식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막상 기사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은 공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一夜享樂에惡疾얻고
三十歲老總角
漢江蒼波에投身
暗澹한貧困의悲劇
호을로 독수공방하든 노총각의투신자살
二十일마포(麻浦)정三六四앞한강에서 지나는행인이익사체하나를발견하고경찰에급보하야소관용산경찰서에서검시조사하야본즉 그는 도화정(桃花町)三一○ 이선춘(李先春)(二七)으로 인생三十고개가 가까워오도록 원수놈의 가난때문에 장가를 못들고 항시셋방에서 홀로 청춘을 한탄으로 지나왓엇다 한다 그러다가 지난달 어느밤은 고적을 못참어 모처럼 향락장에 갓든것이 야속한 운명의 작난이엇든가 불행히도 불치의 화류병을 얻어가지고 돌아왓다 입에풀칠도 뜻대로 못하는처지인지라 병치료를 못하니 병은점점 깊이들어 호구지책이든 생선행상(生鮮行商)도 못하게되매 그와같이 세상을 비관하고 투신자살한 것이 판명되엇다
(동아일보, 1936년 8월 25일)
全首都의거리뒤흔든學生들의怒濤
一八일의 高大학생 '데모'에 뒤이어 一九일에는 국립 서울대학교의 전학생들과 成均舘·東國·京畿·中央·延世·弘益대학생등,약십만명이 대대적인'데모'를 감행하여 수도서울을 완전히'데모'분위기속으로 휘몰아넣었다 이들 각대학학생들은 一一시 四○분경에 이르러시청앞과 의사당앞에서 완전합류한다음 東國대학을 선두로 다시'데모'를 전개世宗路중앙청앞을 돌아景武臺쪽으로 전진하다가 積善동 파출소앞에서 경찰의 공포및최루탄발사를받고 일단 후퇴하였다가 다시전진하여 積善동, 通仁동쪽으로 '코스'를 돌려 마침내 측면에서 '국민대학'앞(경찰'바리케이드'후면)을 돌파-노도처럼 밀려들어 이날하오 一시四○분경 景武臺어귀까지 돌진하였다 경관은 본격적으로 실탄과 최루탄을 발사하여 一부학생들이 현장에쓰러지기시작-이날하오二시현재 십여명의 학생이 절명한 것으로 관측되며 부상자는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동아일보, 1960년 4월 19일)

앞의 1930년대와 1960년대의 두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도의 차만 약간 있을 뿐이지 띄어쓰기에 대한 인식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치면서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공정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
    예로 든 기사들을 살펴보면 신문의 띄어쓰기라는 것이 '단어의 띄어쓰기'가 아니라 오해의 소지만 없다면 '구(句) 단위의 띄어쓰기'가 이뤄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구 단위의 띄어쓰기'를 하는 데 각 신문사 나름의 어떤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신문 제작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띄어쓰기가 점차 정착되고 있다.

3. 붙여 쓰기
    현재 각 신문은 일부 호칭어 등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띄어쓰기 원칙을 지키고 있다.
    '씨, 군, 양'같이 1음절로 된 호칭어는 대부분의 신문이 붙여 쓰고 있다. 일부 신문에서 '홍길동 씨'처럼 띄어 쓰기도 하지만 이렇게 표기하는 신문에서도 성(姓)만 적을 경우에는 '홍씨'로 붙여 쓰고 있어 특별히 띄어쓰기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직함의 경우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는 띄어쓰기를 철저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사 기자의 표기는 '여규병기자'식으로 붙여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신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김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최 회장' '정희태 강원대 교수-정 교수'처럼 띄어쓰기 규정을 지키면서도 자사 기자에 대해서는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명사와 명사가 이어지는 경우에 합성어처럼 붙여 쓰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보복금지, 노사관계, 중소건설업체, 강행통과, 무한정쟁' 등과 같이 띄어쓰기 규정에서 붙여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우가 아니지만 붙여 쓰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모두 가독성을 높이고 제한된 지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특별히 정해 놓은 규정은 없어 취재 기자와 교열 기자의 성향에 따라 좌우될 뿐만 아니라 한 신문에서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며, 게재되는 면에 따라, 기사에 따라 달라지는 등 오락가락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젊은피' '눈먼돈' '막가파' '나홀로 자동차'와 같이 형용사와 명사, 동사와 명사, 대명사와 부사로 구성돼 반드시 띄어 써야 할 것을 붙여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유의 표현은 나름대로 상당히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표현들 가운데 상당수가 '검은돈'처럼 앞으로 하나의 낱말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4. 띄어쓰기의 혼선
    일부 낱말은 띄어 쓸 것인지, 붙여 쓸 것인지에 대해 혼선을 빚거나 붙여 써도 의미가 통한다는 인식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신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쇄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만', '지', '데' 같은 것이 있다.
    '하루만 더 머무르자'와 '하루 만에 떠났다', '떠날지 말지 결정하자'와 '떠난 지 오래다', '막 떠나려는데 그가 들이닥쳤다'와 '가려는 데가 어디냐'처럼 같은 글자이지만 품사가 다르므로 구분해 써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띄어 써야 할 의존명사 '만, 지, 데'를 앞말에 붙여 쓰고 있다.
    부사 '안'과 '못'을 뒷말과 붙여 쓰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안되다'와 '안 되다', '못되다'와 '못 되다'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안'과 '못'은 부사인데도 불구하고 뒤에 오는 동사에 붙여 쓰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합성어의 경우 잘못 띄어 쓰기도 한다. '바로 잡다', '들여다 보다', '살펴 보다', '귀담아 듣다', '못지 않다', '머지 않아', '하루 빨리'와 같이, 붙여 써야 하는 낱말을 띄어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사전마다 품사를 다르게 처리한 경우가 있어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가량'과 '측'을 들 수 있다.
    한글학회의 우리말큰사전이나 민중서림의 국어대사전에서는 '가량'을 명사로 처리해 띄어 쓰도록 한 반면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금성출판사의 국어대사전에서는 접미사로 처리해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측'의 경우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명사만으로, 다른 사전들에서는 경우에 따라 접미사 또는 명사로 규정하고 있어 쓰임새가 다르다.
    이들 낱말에 대해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소정의 절차를 거쳐 결정한 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알려 바르게 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5. 제목의 띄어쓰기
    신문이 띄어쓰기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목에서는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더욱 문제이다. 활자 자체가 크기도 하거니와 어떻게든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이 제목이고 보면 그 폐해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겠다. 신문사에서는 제목에 관한 한 편집 기자가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편집 기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고쳐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4000가구 보증금 날릴판//87년 관측이래 최고 한파//11년만에 감격//대선·신당 개입안해//끙끙앓다 새해 첫경기 승리//반도체값 상승外 눈에띈 호재없어…//벤처창업으로 떼돈벌 기회 많아져//9·11 테러후 美 좋게변해//동점자 10배늘어//세계 50위내 한곳도 못올라//한주유소서 기름 골라사기 아득//주희정 슬픔 뒤로한채 팀 훈련 복귀//세상의 혼돈 모두 빨아 들여라//막판타결 가능성커져

띄어쓰기가 잘못된 제목을 몇몇 신문에서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본 것이다.
    이 밖에 '○○ 할수도' '∼동안' 같은 오류는 수없이 많다.
    의존명사는 붙여 쓰기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수식어와 피수식어는 물론 부사와 동사까지도 붙여 쓰는 형편이다. 심지어 하나의 동사에서 어근과 '하다' '되다'를 분리하여 띄어 쓰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상당수의 편집 기자들이 띄어쓰기를 무시한다기보다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조차 보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제목에서 띄어쓰기가 무시되는 것은 글자 수가 극히 제한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글자 수를 맞추려고, 여러 줄의 제목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아래 위의 형태를 맞추려고 무리하게 띄어 쓰거나 붙여 쓰고 있다.

6. 맺는 말
    미진하긴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신문의 띄어쓰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제자리를 잡았다. 구(句) 단위 띄어쓰기의 남용은 이제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신문의 특성상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자어로 된 명사와 명사가 이어질 경우 이를 합성어처럼 붙여 쓰는 경향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제목의 띄어쓰기 무시 경향 역시 편집 기자들이 시각적 효과를 더 중시하는 관행을 버리지 않는 한 쉬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신문 기사라고 해서 띄어쓰기를 무시하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공정상의 이유로, 또 속보 경쟁이라는 신문의 속성 때문에 100여 년 동안 띄어쓰기는 경시되어 왔다. 이제 컴퓨터의 도입으로 공정상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신문의 띄어쓰기도 점차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00여 년 동안 묵인되어 왔던 관행을 하루아침에 타파하기가 어려운 일일 뿐이다.
    띄어쓰기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동아일보에서 그동안 붙여 써 오던 성과 직함을 띄어 쓰기로 결정할 때였다. 한 후배가 "성과 직함을 띄우니까 어색해요. '이 교수'라고 하면 'this 교수' 같지 않나요?" 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 '이 교수'가 이상하면 '임신부(任神父)'는 괜찮은가? 정(鄭)교수, 부(夫)교수, 조(趙)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