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의 동물 이름 표기


황성규 / 문화일보 논설위원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 된다는 시중의 말을 그냥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신문, 방송 등 언론 매체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학교에서는 한글 맞춤법·표준어 등과 관련되는 어문 규정을 열심히 가르쳐서 학생들을 사회로 내보내는데,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하는 언론 매체는 어문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신문에서 표기하는 고유명사 가운데 동물의 이름만 살펴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학계에서는 동물 이름을 학명(로마자 표기) 외에 한글로 표기된 '우리말 이름'을 전문 용어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언중의 '생활 언어'와의 괴리를 의식하여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말 또는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표기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국어 사전에서도 서울이 아닌, 특정 지역의 말을 표준어로 삼은 예를 볼 수 있다.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는 동물 가운데서 이름 표기가 전문 용어와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골라 살펴본다(각각의 사례에서 신문 기사에 나타나는 동물 이름은 화살표 왼쪽의 것임. 이하 같음).

1. 스라소니 → 시라소니(※전문 용어이지만 비표준어)
    고양잇과 동물에는 삵·표범·호랑이와 시라소니{Felis lynx cervaria (TEMMINCK)} 등이 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1) 에서는 시라소니를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사전의 시라소니 항을 보면 "① '스라소니'의 잘못. ② '스라소니'의 북한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스라소니 항에서는 "고양잇과의 동물. 살쾡이와 비슷한데... 한국 북부, 몽골, 러시아 시베리아·사할린, 중국, 중앙아시아, 북아메리카, 알프스 이북의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시라손'(《훈몽자회》)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우리말 어원사전》(2)에는 "어원 미상"이라고 돼 있다.
    《한국 생물종 목록》(3)의 <부록1 정오표>에 따르면, 'Lynx lynx cervaria TEMMINCK 스라소니'를 'Felis lynx cervaria TEMMINCK 시라소니'로 바로잡는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목록에도 'Felis lynx cervaria TEMMINCK 시라소니'로 나와 있다.
    즉, 이렇게 시라소니로 바로잡히지 않은 스라소니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금성판 국어대사전》(4)과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랐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한국교원대학교 생물교육과의 김수일 교수는 지난 98년 필자의 이와 관련한 전화 질문에 대해 "학계에서도 '스라소니'가 아닌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쓴다"고 확인해 준 바 있다.(5)
2. 빠가사리 → 동자개(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빠가사리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6)에서는 "'빠각, 빠각'하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민물고기의 하나인 '자개'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즉, 자개(동자개)와 빠가사리를 같은 말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에서 빠가사리는 동자개{Pseudobagrus fulvidraco (Richardson)}의 강원도 방언이거나, 동자개의 북한어(7)이다.
    동자개는 서해와 남해로 흐르는 각 하천에 서식하며, 북한과 중국 등지에도 분포한다.(8)   동자갯과에는 동자개 외에도 눈동자개와 대농갱이 등이 있다. 이름이 비슷한 배가사리는 잉어과의 물고기로 전혀 다른 종이다. 자가사리 역시 퉁가릿과로, 동자개와는 다른 어종이다. 단지 동자개의 방언인 빠가사리와 발음이 비슷할 뿐이다.
3. 곰장어(꼼장어) → 먹장어(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포장마차 등에서 술 안주용으로 많이 파는 요리인 곰장어구이(또는 꼼장어구이)의 재료가 되는 곰장어의 전문 용어는 먹장어{Eptatretus burgeri (Girard)}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먹장어를 "①꾀장엇과의 바닷물고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②'뱀장어'의 방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곰장어 항에서는 "①'먹장어'로 순화. ②'갯장어'의 잘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우리나라 남쪽바다에서 많이 나는 바다고기의 한가지."(9)라고 먹장어를 풀이하고 있다.
    먹장어와 뱀장어는 서로 다른 어종이며, 갯장어를 곰장어로 불러서도 안 된다. 뱀장어와 먹장어, 갯장어는 각기 다른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곰장어(또는 꼼장어)라는 이름의 물고기는 실제론 없다. 다만, 방언 또는 속칭이거나 상품(요리) 이름, 비전문 용어일 뿐이다.
4. 아나고 → 붕장어(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결혼식을 갓 끝마친 신혼 부부가 수줍어하며 신혼 여행지의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은 뭘로 먹지...? 음~, 회(膾)가 좋겠군.' 하고 생각한 새신랑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부를 향해 말했다. "자기야, 아나고회 먹으러 가자." 그러자 새색시가 고개를 비스듬히 들더니 "자기, 우리 하고 회 먹으러 가자~."라고 대답했단다.
    이는 인터넷 유머다. 새색시는 '아나고(あなご·穴子)'를 '안 하고'로 잘못 들은 것이다.
    이 아나고를 순화한 말이 붕장어{Conger myriaster (Brevoort)}나 바닷장어이다. 물론 전문 용어는 붕장어이다.
    붕장어는 식당, 횟집 등에서 요리로 만들 때에는 '아나고'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화식(일식)집에서는 저급 어종이라 하여 다루지 않는다(10)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붕장어를 "붕장엇과의 바닷물고기. ...뱀장어와 비슷하나 입이 크고 이가 날카롭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전남 지방에서는 '꾀장어, 참장어'라고도 불리는 붕장어는 5과 22종으로 보고돼 있는 뱀장어목 중에서도 갯장어와 더불어 대표적인 어종이다.(11) 검붕장어와 비슷하나 옆줄 구멍이 흰 점을 이루고 있지 않으며 몸 빛깔이 검어서 구별된다.(12)

5. 아구 → 아귀(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물고기 가운데서 못생긴 아귀(Lophiomus setigerus)를 일러 '아구'라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아귀는 "아귓과의 바닷물고기. ...한국,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멕시코 등지의 태평양 연안에 분포한다. ...아귀매운탕, 아귀찜."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풀이돼 있다.
    그 생김새를 보면 가관이다. 몸이 넓적하고 머리 폭이 넓으며 입이 대단히 크다. 아래턱이 조금 긴데 아래위 턱에 굵고 날카로우며 크고 작은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나 있다.(13)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악마고기(devil fish)'라고 하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모양이 흉측하다. 아귀는 뼈까지 험상궂은데다 온통 큰 주둥이뿐이다.(14)
    음식을 욕심껏 입 안에 넣고 마구 씹어 먹는 모양을 두고 '아귀아귀' 또는 '어귀어귀'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물고기의 전문 용어도 쉽게 기억될 것이다. 식당이나 수산 시장 같은 데서 '아구'라고 부르는 것은 발음의 편리성 때문에 나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6. 참치(다랑어) → 다랭이(※전문 용어이지만 비표준어)
    꼬리상어(일명 카스트로)와 열대어류인 '만다이'를 참치로 속여 시중 가격보다 2배 이상 비싸게 팔아온 참치 판매 체인 업체와 판매 업자가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15)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참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고, 전문 용어(국명)로는 다랭이 무리를 일컫는다.
    고등어아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가운데는 고등어 말고도 점다랭이·가다랭이·황다랭이·날개다랭이·눈다랭이·참다랭이·백다랭이등 여러 종이 있다. 이 가운데 참다랭이가 통조림 통 속의 참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실제로 어느 참치 회사의 통조림 통 겉에도 원재료 및 함량란에 '다랑어(원양산) 79%'라고 표기돼 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랭이를 방언(경북)으로, 다랑어를 표준어로 올려 놓았다. 《금성판 국어대사전》에서는 다랑어와 다랭이를 동의어로 보면서 다랭이 항에 풀이말을 싣고 있다. 대신 참다랑어는 표제어로 올리지 않고 참다랭이만을 표제어로 올려서 설명했다.(16)
    한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참치방어'도 참치라고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참치방어는 가라지·전갱이·부시리·방어와 더불어 전갱잇과의 물고기로, 다랭이 무리와는 다른 어종이다.
    북한의 《현대조선말사전》에서는 참치를 "이면수과에 속하는 바다물고기의 한가지. 길이는 30센치메터안팎이고 ...."라고 설명한다. 참치를 고등어과가 아닌, 이면수{임연수어·Pleurogrammus azonus (Jordan et Metz)}과(17)로 분류하는데다, 3m 정도인 몸길이를 30㎝ 안팎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다랭이(18)무리와 다른 어종을 일컫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남북한 간에 동물과 식물의 이름이 서로 다른 경우(19)는 통일 이후에 대비하여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7. 청설모 → 청서(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서울시에 따르면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와 개들이 야생화하여 먹잇감을 찾아
    남산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다람쥐, 청서, 비둘기 등 그 곳에 서식하는 야생 조수들이 수난 중이라고 한다.(20)   이들 집을 나간 고양이들이 먹이 부족으로 인해 야산에서 청서 등을 잡아먹거나 비둘기의 알, 새끼 따위를 마구 훔쳐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문에서 청설모라고 표기하는 동물은 '청서{靑鼠·Sciurus vulgalis coreae (SOWERBY)}'(21)를 가리킨다. 이는 청서의 모피를 청설모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나, 사용 빈도나 주민들의 이해력 등을 내세워 신문에서는 청서 대신 청설모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청서는 다람쥐·날다람쥐·하늘다람쥐와 함께 설치목 다람쥐과의 포유동물이다. 다람쥐과에는 46속 245종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 4종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2) 청서는 귀 끝에 3㎝ 가량의 털이 삐죽삐죽 나 있어서 다람쥐과의 다른 무리들과 쉽게 구별된다. 청서를 날다람쥐나 하늘다람쥐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전문 용어도 청설모가 아니라 청서이다.
8. 개똥벌레 → 반딧불이(전문 용어이자 표준어)
    전북 무주군이 천연기념물 제322호인 반딧불이의 상표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허를 출원, 등록하자 전국의 시민·환경단체들이 특정 자치 단체의 반딧불이(Luciola cruciata) 상표 독점에 반발하고 나섰다(23)는 보도가 있었다. 반딧불이는 청정한 환경에서만 자란다고 하여 이를 무공해 환경과 연계시킨 관광 상품화 문제로 각 단체들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반딧불이는 반디·반딧벌레·반딧불·개똥벌레·단조(丹鳥)로도 불리는 딱정벌레의 일종이다.(24) 그런데 《국어용례사전》에서는 개똥벌레와 반디를 표제어로 올리고, 개똥벌레 항에 풀이말을 달아 놓았다.(25)
    카리브해 연안 지방이나 적도 주변처럼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캄캄한 정글 속을 다닐 때, 등불 대신 반딧불이를 가득 잡아넣은 그물 자루를 손목이나 발목에 달고 다닌다고 한다.(26) 반딧불이가 없었더라면 '형설지공'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개똥벌레보다는 반딧불이라고 불러야 밝은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스라소니, 빠가사리, 곰장어(꼼장어), 아나고, 아구, 참치(다랑어), 청설모, 개똥벌레의 전문 용어 또는 표준어를 살펴보았다. 이 밖에도 블루길→파랑볼우럭, 골뱅이→큰구슬우렁이, 살쾡이→삵 등의 동물 이름과 아카시아→아까시나무,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대나무→'대[竹]' 같은 식물 이름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전문 용어와 표준어, 속칭(또는 상품명)이 서로 다른 경우, 그 가운데 하나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그 나머지 이름도 함께 밝혀 줄 필요가 있다. 특정 표기만 고집할 경우 그 밖의 이름을 사용하는 집단은 의미 파악에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노력이다. 컴퓨터와 무선 전화기 등을 이용한 인터넷이 널리 활용되는 지금, 공용어(共用語)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거꾸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이를 사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북한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표기와 남한에서의 표기를 통일하는 작업을 할 때 예상되는 많은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를 위한 노력임과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