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하강, 언어 표현력의 상승
조남현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주기 마련이다. 작가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나중에 발표한 작품에서 초기작의 미숙성을 극복하곤 한다. 물론, 성공한 작가라고 해서 쓰는 작품마다 전부 문제작일 수는 없으며 초기작보다 후기작이 반드시 나으란 법도 없다. 문제작가 혹은 문학사적 작가의 대열에 포함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 주는 작가들의 경우, 성장 과정이 사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으로 측정되기도 하나 언어 표현이 원숙미를 더해 가는 것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정밀한 묘사나 정확한 의미화에 닿기 위해 더욱 많은 어휘를 동원하게 되고 더욱 묘미있는 단어들을 이끌어 온다는 것이다. 1940년 전후에 발표된 한설야의 소설들은 이런 추이를 잘 보여 주었다.
한설야는 「평범」(『동아일보』, 1926. 2. 16.-2. 17.), 「그 전후」(『조선지광』, 1927. 5.), 「합숙소의 밤」(『조선지광』, 1928. 1.) 등과 같은 1920년대 발표작보다는 「술집」(『문장』, 1939. 7.), 「종두」(『문장』, 1939. 8.), 「태앙은 병들다」(『조광』, 1940. 1-2), 「숙명」(『조광』, 1940. 11.), 「파도」(『신세기』, 1940. 11.), 「두견」(『문장』, 1941. 4.), 「세로」(『춘추』, 1941. 4.) 등과 같은 1940년 전후 작품들에서 '능숙한 표현'을 과시하고 있다. 이때의 능숙한 표현은 표현 기교의 증대, 어휘의 확대, 고유어에의 집착, 정밀한 묘사 경향 등을 포함한다. 1930년대 후반부에서 1940년대 전반기 사이에 발표된 한설야의 작품들은 작가의 좌익사상의 패배 또는 후퇴를 일러 준다. 흔히 전향소설로 일컬어지고 있듯이 사상의 패배와 표현의 원숙이 공존하고 있는 1940년 전후의 한설야의 소설들은 이데올로기 표출 의지와 문학적 표현력은 역상관의 관계에 놓일 수도 있음을 입증해 준다. 최소한, 이데올로기의 치열성과 언어 표현력의 신장은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술집」, 「종두」, 「숙명」, 「파도」 등 네 편을 대상으로 하여 주로 어휘론과 표현 기교론의 시각에서 한설야의 표현 역량을 측정해 보기로 한다. 이 네 편의 소설은 평소에 잘 듣지 못한 어휘들을 많이 내보인 공통점을 갖는다. 「술집」에서는 '드티다, 쇠통, 소차없다, 도간도간, 반지바르다, 마뜩지않다, 악청, 어방없이'(A군), '사정모, 댁실댁실, 붙돌, 주라질, 가즌가즌, 신음신음, 알끈하다'(B군) 등의 낯선 어휘가 나타나 있다. 「종두」에서는 '팔팔결, 도두보다, 돌음돌이, 겸장군, 지질하다, 거성하다, 시뜻하다, 벅적대다, 각근히, 찌글떠하다, 벅작 고아내다, 왕청되게, 탐탐히, 찌그렁이, 여우별'(A군), '손눈, 전젠벽, 오골배지, 듬썩, 고들머리, 중통, 허껴운, 피숙이, 선손을 쓰다, 잔잔깐, 잡자우, 눈끼빠른, 눈무세, 구절구절, 이르르하다, 지비벌겋다, 실쭉밀쭉, 비젓하다, 등통, 수겻하다, 찔깔보다, 게발아, 뿌상투, 꼭져주다, 무틀하다, 모듬발'(B군) 등의 낯선 어휘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이 가장 긴 탓도 있으리라. 「숙명」에서는 '빨랑빨랑, 빈충맞다, 죄죄하다, 물두무, 염량좋은, 알끈히, 해망적다, 내무진, 맞드리, 나뜨다, 말장단, 진짬, 쫄쫄이, 뽀닥뽀닥, 어칠어칠, 친친하다, 쇠배, 갑자르다, 치탈하다, 고아대다'(A군), '디인둥이, 거듬새, 놋쟁이, 육잡, 알씸있다, 싯듯하다, 성수나다, 마룩마룩, 풀수'(B군) 등의 어휘를 찾아 볼 수 있다. 「파도」에서는 '미타하다, 웅심깊다, 씨물씨물, 언청간, 시까스르다, 얼쭝얼쭝, 행내기, 등뜨다, 화침질, 두루거리, 돌음돌이, 알망궂다, 얼쑹얼쑹, 설피다, 길나재비, 남남그리다, 드소문하다, 점직하다, 매원하다, 어련부련, 는실난실, 민민하다, 주역꾸역, 안통이, 박지르다, 사피하다'(A군), '아욤없이, 막비, 게를러하다, 죄죄한, 양치, 손다심, 위렴해서, 예장받다, 찌긋찌긋, 쪽장을 대다, 쪼를 빼다, 범을리다, 만침하다, 부부리가 여물다'(B군) 등과 같은 낱말들이 줄을 잇고 있다.
A군에 속해 있는 어휘들은 국어사전을 통해 그 뜻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B군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국어대사전을 통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B군에 있는 어휘들 가운데는 전후 문맥을 보아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한설야도 일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단어나 구절을 여러 작품에서 애용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염량좋은', '팔팔결', '도간도간', '돌음돌이', '진짬', '수겻하다', '벅작 고아내다', '성수나다', '시까스르다', '지질하다', '마룩마룩' 등은 두 작품 이상에서 나타나거나 한 작품 안에서 거듭 나타나고 있다. 한설야가 애용했던 단어들은 우연의 일치인지 우리 고유어의 묘미를 담뿍 담아 내고 있다. 그만큼 한설야는 단어 하나하나를 아무렇게나 고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상과 같은 예문에서 '염량좋은 소리'는 '편한 소리'나 '똑똑한 소리'로, '염량좋게'는 '염치좋게'로 바꿀 수 있다. '팔팔결 정결하다'는 '큰 차이나게 정결하다'로, '팔팔결이니'는 '큰 차이가 있으니'로 대치해도 무방하다. '도간도간'은 '띄엄띄엄'으로, '돌음돌이 할 줄 모르고'는 '바쁘게 돌아 다닐 줄 모르고'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도간도간'은 첩어로 되어 있거니와 한설야는 작품에서 첩어를 많이 쓴 편이며 또 가끔 의도적으로 준첩어(準疊語)도 사용해 보였다. 국어대사전을 펼쳐 보아야지만 확실한 뜻을 알 수 있는 첩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외에, 전후 문맥을 보면 그 뜻이 대강 짐작은 되지만 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은 첩어로는 '마룩마룩'(「숙명」), '찌긋찌긋'(「파도」), '댁실댁실'(「술집」), '가즌가즌'(「술집」), '신음신음'(「술집」), '구절구절'(「종두」)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련부련', '는실난실', '주역꾸역', '실쭉밀쭉', '오불꼬불' 등과 같은 준첩어도 심심치 않게 보여 주고 있다. 이중에서도 '주역꾸역'은 '꾸역꾸역'으로, '실쭉밀쭉'은 '실쭉실쭉'으로, '오불꼬불'은 '꼬불꼬불'로 바꾸어 쓸 수가 있으나 '걱정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제대로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어련부련'과 '남녀간 몸가짐에서 성적 충동을 받아 야릇하게 혼잡스럽게 구는 모양'을 가리키는 '는실난실'도 다른 첩어로 바꾸기가 어렵다. '어련부련'의 경우, <놔요. 밥 지어야죠/밥은 어멈이 어련부련히 질라구. 이리 와요>(「파도」)와 같은 예문을 보면 '어련히'로 바뀔 수도 있다. 또 <그 손은 독수리의 거센 톱처럼 안해의 몸과 머리를 움켜쥐고는 는실난실 분탕질을 쳐서 안해의 머리칼이 또 적잖이 빠졌다>는 문장에 나타난 '는실난실'의 문맥적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와 거리를 보인다.
'빠르게 자꾸 지껄인다'는 뜻의 '죄죄하다'(「숙명」), '오래오래'의 함경도 방언인 '쫄쫄이'(「숙명」), '축축하고 끈적끈적하다'는 의미의 '친친하다', '혀를 빠르게 놀려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뜻의 '남남그리다'(「파도」), '매우 염려스럽다'는 뜻의 '민민하다'(「파도」), '탐탁하게'와 같은 말인 '탐탐히'(「종두」) 등과 같은 말들도 찾아 볼 수 있다. <안해가 곰상스럽고 잔망스럽고 죄죄한 것을 나무릴사 하니 안해 심사 꾸여질밖에>에서 '죄죄한 것'은 '수다스러운 것'을, <금년은 기왕보다 지원자가 많아서 어린애가 똘똘치 못하고 말 대답을 쫄쫄히 못하면 안 되기 십상이라고 별의별 것을 다 일깨워 두려고 들었다>에서 '쫄쫄히 못하면'은 '길게 하지 못하면'을 뜻한다. <자기는 그 좁은 집 속에서 얼마나 볼꼴 사납게 끓고 식고 싸우고 남남그리고 하는가>에서의 '남남그리고'는 '마구 지껄이고'로 바꿀 수 있다. 한설야는 이런 단어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함으로써 작품 자체의 신선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단어들은 각 작품으로 들어가 소설어가 되어서 시어처럼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사고 있다. 어렵거나 낯선 단어들을 양념 삼아 배치하기만 해도 일거에 작품의 밀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한설야는 「종두」에 오면 엄숙한 이념분자로서의 촉수를 버리고 채만식이나 염상섭을 능가할 정도로 여유있고, 익살맞고, 재치있는 표현을 많이 써 보이고 있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전반에 발표된 소설들을 보면 한설야는 이데올로그(ideologue)를 포기하고 스타일리스트(stylist)로 변한 느낌마저 준다.
<소가 웃다가 꺼랭이 터질 지경이다>, <싫건 무뽑듯 아이새끼 뽑아 내고>, <소견없는 동리 아낙네들이 들락날락 개싸대듯 싸대는 이렇게 쑥떡을 친 것 같아서 경구는 우선 대문부터 닫아 걸었다.>, <눈은 보리동냥을 갔나>, <경구는 여기서도 자기와 안해의 성격이 정반대--정말 꼬물도 에누리 없이 정반대인 것을 깨닫는다. 거기에 경구의 성난 이유가 있다>, <뉘집 주제비 없는 아낙네가 또 내외간이 소 닭보듯 하고 있는 판에 자발없이 찾아왔나>, <일껀 재미있게 논다는 게 뿔 나오려는 송아지처럼 대가릴 맞대고 비비닥거리고 그것이 좀 지나가면 닭의 새끼처럼 툭툭 차고 받고 한다.>, <황아장수 망신은 강아지가 시킨다구, 이놈의 새끼 집안 망신만 시키구>, <이놈의 새끼 개대가리 감투지, 모자는 모슨 모자냐>, <속담에 여편네는 남의 여편네가 곱고, 자식은 내 자식이 곱다더니, 이 심술쟁이에게도 이 속담이 들어맞나보다 하구>, <그 순간 거악스런 인간들 앞에서 마치 용차를 향한 당낭이처럼 발악하는 너무도 약한 안해가 보인다> 등은 속담이라든가 관용어구를 사용하여 웃음을 불러 일으키는 한편 대상을 낮추거나 뒤틀어서 보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때의 낮추어 보기나 뒤틀어 보기는 증오나 복수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긍정을 위한 부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설야의 소설에서는 장문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장문이 비교적 많은 「숙명」에서는 남편 치술이 아내에게 꼭 쥐어 사는 모습, 닭들이 배가 고파 아내를 괴롭히는 모습, 남편이 공장에 다닌 이후로 남의 집에 가서는 밥을 절대로 먹지 않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장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이 집에서는 내가 일등 아닌가. 그러니까 어른이 쉬어야지. 그나저나 여보 마누라 나 오늘만 좀 쉽시다. 내일이 내무진이랬으니 날이 없을가 걱정이오」하는 반죽 좋은 소리---하기는 그런 사람 좋은 태화탕 같은 소리와 둥글둥글 수박같은 귀임성 땜에 여태 이 숙맥에게 붙어 살고 살 뿐 아니라 그것이 때로는 매력이 되고 애교가 되고 그물못이 되어서 참아 잊을 길 없어 안해는 찍하면 티격태격 맞드리까지 하면서도 그래도 때로는 비둘기처럼---이건 좀 지나가는 과장이지만 그러나 치술이가 알씸있게 구슬린 날이면 그 무서운 치명적인 표정 대신에 잊어버린 애교깨나가 안해의 얼굴과 몸집에 나뜬다.
이 문장 속에는 '내무진, 반죽좋은, 태화탕같은, 귀임성, 숙맥, 그물못, 맞드리, 알씸없이, 나뜬다'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사용 빈도가 낮은 말들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남편이 거센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요모조모로 애쓰는 태도가 활동사진 보는 듯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설야는 어려운 단어, 낯선 어휘, 우리의 고유어 등의 적절한 사용이 작품 전체의 응집도를 높여 줄 수 있음을 실제 작품을 통해 일깨워 주었다. 드물지도 많지도 않게 사용된 낯선 어휘들은 사상의 패배에서 헤매고 있었던 한설야를 마침내 의욕적인 작가의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