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후기 시인으로 이름은 김병연.
김삿갓은 그가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이름을 물을 때, "김립(金笠)"이라 대답한 것에서 유래.

본디 김삿갓은 홍경래의 난으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홍경래에 의하여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당시 선천 부사 5품 관료인 김익순이 붙잡히자 김익순은 홍경래에게 구걸하여 항복. 일대의 가족은 모두 목숨은 부지하였으나 홍경래의 세력이 패하자 반역을 이유로 김익순이 처형되고 가문이 몰락하여 더없는 막장 테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김삿갓의 이야기는 이런 파란만장한 배경에서 지가된다.

조부의 죄는 그 대로 끝났지만, 그의 아버지는 수치에 병에 걸려 일찍 죽고 만다. 그래도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김삿갓은 몰락하였어도 양반집 자제[1]인지라 머리만큼은 꽤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가 나이를 먹어 16세가 되었을 때, 과거를 본 적이 있다 전해지는데 하필이면 그 날의 시제가 김익순을 논박하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의 잘못을 이리저리 적어 제출하였는데[2] 급제 해서 즐겁게 돌아와서 자랑하다가 어이가 없어진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였고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답안을 적어내려갔던 것이다.

이에 큰 충격을 받아 4년간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다가 20살 되던 해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4년 중 결혼을 하였는데 아내가 절세미인이라 소문이 자자했었던지라 이것도 조용히 방구석에서 지낼려던 김삿갓에게는 여간 스트레스가 미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는 김삿갓은 이미 자신의 조부가 반역으로 처형된것을 알고 있었고[3], 관서지역에 갔다가 관서지역의 어떤 선비가 자신의 조부를 조롱하며 시를 쓰자[4] 피를 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어떻게 출세를 해보려고 같은 문중인 안동 김씨 세도가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자신의 신분을 시골 양반으로 속이고 같은 양반들끼리 모인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만 자신의 신분이 들켜버리자 허심탄회하가 놀던 양반들이 그를 따를 시킨데다가, 사촌이 과거를 봐서 합격했지만 김익순의 자손이란 이유로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져서[5] 결국 김삿갓은 "난 출세는 못하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포기하고 유랑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22세까지는 그냥 이곳저곳 다니는 방랑생활을 하였으나, 자신을 더 이상 하늘을 볼 낯짝이 없다는 이유로 몸 전체가 그늘지는 거대한 삿갓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이후 김병연은 김삿갓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름보단 김삿갓(김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삿갓착용에 대한 다른 설들도 있다.

첫째로, 당시 삿갓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적인 패션아이템(?)이었다. 낚시하던 노인네가 주로 삿갓을 쓰고 낚시를 한다던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김삿갓의 삿갓은 민중과 함께하려는 그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출처: 이응수의 '풍자시인 김삿갓').

다음은 위와 관련하여 김삿갓 본인이 쓴, 참고할 만한 시 한 편이다(편역본 출처: 양동식의 '길 위의 시').

나와 삿갓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한 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목동이 걸치고
송아지 몰며

어부는 그저
갈매기와 노닐지만

취하면 걸어두고
꽃 구경

흥이 나면 벗어 들고
달 구경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체면치레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사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당시의 태세를 풍자하고 비판하던 김삿갓이 '반역자' 취급을 받은 할아버지가 있어서/혹은 그런 조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하늘을 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삿갓을 쓴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사실 당시의 조선왕조와 안동 김씨의 행각에 회의를 품고 방랑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조부 김익순도 사실 관직매매로 선천부사직을 얻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런면에서 방랑을 한게 아닌가 싶다. 홍경래의 난도 사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원인중 하나였으니....

죽을 때까지 방랑생활을 하면서 배고프면 훈장질을 하며 끼니를 때웠고, 즉석시로 현 양반태세를 비판하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의외로 전국에 팬들이 많았다 전해진다. 특히 기생들 중 팬이 많았는데, 인물로 보는 조선사(김형광 지음/시아 출판사)라는 책을 보면 자신의 팬인 기생들과 잠자리를 가지고도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10년 단위로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아들과 딸들을 보고 또 나가고 그런 모양이다. 역사서에 적혀있기는, 아들이 그만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라는 편지를 수십통 아무 마을이나 랜덤(…)으로 돌린 모양이다.[6] 그리고 아들 포함한 집안 사람들이 몇 번 데리러 오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심부름을 보내거나 하고서 도망쳤단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 40 먹어서 힘들다는 이유로 집에 틀어박히려고 왔는데, 가정의 일을 소홀히하여 냉대받는 집안 현실 때문에 또 방랑생활 시작. 결국은 외지에서 사망, 아들이 직접 가서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데리고 왔다고 한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방랑생활이 몸에 배었을진 몰라도, 가족 입장에서는 완전한 막장 테크 크리 + 죽어서도 결국 아들이 멀리까지 나가 데려와야 하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멜랑꼴리를 그리는 천재(적으로 재미없는)작가 비타민이 뜬금없이 그에 관한 일화를 종종 올리는 걸 볼 때,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것 같다.(…)

왠지 은거기인이나 도사틱한 이미지가 있는데 이미지만 그럴 뿐 그저 방랑자. MBC 드라마 상도 마지막 부분에 잠깐 나오기도 한다.

이름의 특성 때문인지 국어나 문학 시간에 김삿갓에 관련된 것이 나오면 일부러 "김삿갓이" 이런 식으로 노려서 강조해서 읽는 사람도 있다. 만약 낄낄댄다면.... 뭔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그의 일생을 <시인>으로 소설화시켰다.

여담으로, 아래와 같이 쪼잔한 친구의 파자문을 풀어서 파자문으로 역공격을 한 일화가 있다.
김삿갓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안주인이 "人良卜一(인량복일)하오리까?"하고 묻자
그 친구가 "月月山山(월월산산)하거든."하고 답했다.
그러자 김삿갓이 화를 내며
"丁口竹夭(정구죽요)로구나 이 亞心土白(아심토백)아."
하고 가 버렸다.
이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 人良 卜一 = 食(밥 식) + 上(윗 상) = 밥을 올리다
  • 月月 山山 = 朋(벗 붕) + 出(날 출) = 친구가 나가다
  • 丁口 竹夭 = 可(옳을 가) + 笑(웃을 소) = 가소롭다
  • 亞心 土白 = 惡(나쁠 악) + 者(놈 자) = 나쁜 놈
따라서, 아래와 같은 내용이 된다.
김삿갓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안주인이 "식사 올리오리까?"하고 묻자
그 친구가 "저 친구가 가거든."하고 답했다.
그러자 김삿갓이 화를 내며
"가소롭구나나쁜 자식아."
하고 가 버렸다.


어느 서당에 들렸는데 제대로 대접도 안해주고 쫓아내니까 열받아서 썼다는 시도 꽤 유명하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내 일찍이 서당인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인사조차 않는구나.


의미만 보면 좋아 보이지만 이걸 발음해서 읽으면....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



2. 80년대 후반에 나온, 가수 홍서범이 부른 노래 제목. 당연히 1.의 인물을 소재로 부른 곡으로, 한국가요 역사상 최초의 랩송으로 알려져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 보다 앞선 랩송.

랩부분 중에 "김삿갓이삿갓이 김삿갓" 하는 부분이 있어 중고딩들은 아주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의 의의는 없다(?)


3. 1996년에 보해양조에서 내놓은 소주. 무려 소주 위의 소주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프리미엄 소주'를 표방하며 감미료로 무려 을 집어넣고, 기존의 투명한 소주병이 아닌, 새카만 색의 전용 소주병을 사용하여 출시하였다. 당시 출고가(시장판매가가 아님)가 무려 1258원. 의외로 인기를 끌자, 진로의 '참나무통맑은소주', 두산경월(현 두산주류)의 '청산리벽계수' 등이 발매되면서 프리미엄 소주 시장을 이끌었지만, IMF의 철퇴를 맞고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근데 그래봤자 희석식 소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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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려 그 유명한 안동 김씨 , 그 가운데도 성골급인 장동 김씨 일족이다. 이 점 덕분에 멸문지화의 위기에 몰렸음에도 조부 김익순을 사형한걸로 일가의 죽음을 면한것이다.
   [2]  그 때 썼다는 시에 따르면 선대왕이 보고 계시니 넌 구천에도 못가며, 너는 역사에 영원한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3]  과거시험을 보려면 증조부부터 자신까지 4대의 이름을 적어야 한다. 그런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김삿갓이 조부가 누군지 몰랐을까라는건 의문이다.
   [4]  그 시가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김삿갓이 과거시험에서 썼다는 시였다.
   [5]  실록에도 나오는 사안이라고 한다.
   [6]  그런 편지도 잘도 받은걸 생각하면 인기가....